자식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
"아버지의 밥그릇"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127:3)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를 모시고 계시는 성도님들은 어버이의
수고로움과 숭고한 마음을 뒤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 몇 년 전에 한 번 언급한
예화의 이야기를 다시 보고자 합니다.
이 예화는 오늘날의 늙은 부모와 자녀들
간의 생활에 큰 교훈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갈수록 악해져만 가는 아니 결혼만 하면
자기들만의 행복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부모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 생각하며
기록합니다.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이 노인은 아들의 가족과 같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눈은 짓물러서 항상 껌벅거렸고 그가
음식을 먹을 때는 손이 떨리고 힘이 없어
음식이 온 밥상에 흐트러지기 일쑤며 입가
에는 음식이 항상 붙어다녔습니다.
참다못한 며느리가 어느날 남편에게 이렇게
쏘아 붙였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아버님 앞에서는 더러워서 밥도 못먹
겠단 말이에요!"
그날 밤 부부는 긴 의논을 한 끝에 다음날
부터는 아버지를 따로 부엌 귀퉁이에서
식사를 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보통 그릇이
아니라 흩어지지 않게 커다란 뚝배기에 담아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의 손이
너무 떨려서 그만 뚝배기마져 부엌 바닥에
떨어트려 산산조각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는 남편에게 말하기를,
"도저히 안되겠어요! 이제 부터는
밥을 구유에 담아드려야 겠어요!"
하면서 며느리는 소의 여물통 같이 긴 구유를
만들어 그 속에 아버지의 음식을 주기 시작
했습니다. 그들 부부에게는 네 살 짜리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보니 아들 녀석이 어디서
주워왔는지 나무쪽을 들고서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애, 너 무얼하고 있는거냐?"
네 살짜리 아들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유를 만들고 있어요, 그래야 이
다음에 아빠와 엄마가 늙으면 여기에다
밥을 담아드릴 수 있을게 아니에요?"
그 아이의 말을 들은 부부는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날밤 그들은 서로 붙들고 울었습니다.
그 후 그들 부부는 아버지께 사죄하고 아버지를
다시금 식탁으로 모셔와서 온 가족이 서로
도우며 늙으신 아버지께 음식을 먹여드리며 화기
애애하게 식사를 하였으며 아버지께 효도하면서
최선을 다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들도 이처럼 우리가 키우는 아이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지 말고 하나님께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서 다시는
부끄럽지 않는 성도들이 되어야할 줄로 믿습니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열리고, 나쁜 나무에서
는 나쁜 열매가 열립니다. 즉, 뿌리가 좋으면 가지
나 열매도 좋다는 말이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여!
부모는 살아 계실 때에 부모인 것입니다. 죽은
다음에 아무리 서럽게 슬퍼하며 아버지를 그리워
하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답니다.
부모는 살아 계실 때에 최선을 다하여 섬겨야
되는 것이랍니다.
기독교에는 죽은 자에게 제사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천국이 있기 때문이지요, 오늘 이 네
살 짜리 아들로 인하여 깨달음을 얻은 부부처럼
우리 모두는 부모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명령하신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지키며 축복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살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복된 주일 섬기시는 교회에 가셔서
은혜안에서 기쁨으로 예배 잘 드리신 후
연휴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주의 이름으로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주의 말씀 받은 그날(찬송가 20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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