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학/영상시

그 언덕 위에 나비

선하도영 2008. 5. 28. 17:51



그 언덕 위에 나비

권애숙

그 언덕 위에 내가 잠시 누워있을 때

낮은 언덕이 되어 둥글게 구부러져 가만히

내 속에 톡딱! 톡딱! 톡딱!

희미하게 맥박 뛰는 소리 듣고 있을 때

노랑나비 한 마리 가슴 위에 살풋 날개를 내렸다출렁,

흔들리며 나는 나비를 받아 안았다

나비는 식어가는 내 몸 속에 숨어 아직도
 
눈뜨지 못한늦은 꽃눈을 찾아냈나 보다

부드럽게 날개를 팔랑거리며 나비는

마른 내 몸을 정성들여 핥는다이미 뿌리혹 속으로

까마득하게 잦아들고 있는 꿀물,

어두워지는 내 여자를 뽑아 올린다

봄날 오후 다섯 시두터워진 몸을 뚫고 힘겹게

솟구치는뜨거운 꽃봉오리의 오르가즘

아아,

아직도 꽃 피울 수 있다니

모락모락 새 길을 토할 수 있다니

노을이 내리는 언덕 위에 꽃잎마다

나비의 혓바닥을 꽂은 채 꿈인 듯 느릿하게

꽃 피는 나를 흔들며 가랑가랑 봄날이 건너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