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제일교회

분별력은 친밀함에서 나온다.

선하도영 2008. 4. 30. 22:08


 분별력은 친밀함에서 나온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계시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라는 그분 말씀을 
바로에게 전하라고 하셨다. 
바로의 완강한 고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적과 이적의 능하신 손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을 구원하셨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받은 것은 
신약시대 우리가 죄의 굴레에서 구원받은 것에 
비견된다. 
애굽은 세상 방식의 모형이요 
이스라엘은 교회의 모형이다. 
거듭날 때 우리는 폭정과 압제의 세상 방식에서 
자유를 얻는다. 
이스라엘 자녀들이 해방된 후 모세는 그들을 데리고 
어디로 향했을까? 
말씀을 전할 때 이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약속의 땅 가나안"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답이다. 
그는 호렙이라고도 불리는 시내 산으로 향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주신 말씀은 
"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7:16;8:1,20;9:1,13;10:3)였다. 
모세가 어찌 감히 약속 주신 분을 
먼저 만나게 하지도 않고 약속의 땅으로 
그 백성을 들이려고 했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원하시는 바가 아니다.
하나님의 계시 없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면 
그들은 그곳을 우상의 소굴로 만들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난 25년간 구원받은 수많은 
교인들에게 있었던 일이다. 
그동안 강조점은 하나님의 마음과 성품이 아니라 
그분의 약속과 공급을 전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데 있었다. 
교회의 메시지는, 사람들을 영광의 주님을 알고 
섬기는 생활로 이끈 것이 아니라 영원한 안전에 
수반되는 형통한 생활로 끌어 모았다. 
군중이 몰릴 만한 긍정적 메세지를 애써 전하는 
사역자들이 많았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려면 강한 책망의 메세지를 
통한 변화가 필요하건만 그들은 그런 메세지를 뺀다.
모세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변했었다. 
그는 백성에게도 그와 같은 체험이 꼭 필요함을 알았다. 
떨기 나무에서 여호와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백성을 해방시켜 본토로 돌아가게 하는 
독립 운동을 벌였을 것이다. 
오래 전에도 그 비슷한 일을 하려다 도망치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적 사명감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사역자들이 있다.
하지만 인간적 사명감은 있되, 후미진 광야에서 
자신을 계시하실 기회를 하나님께 드린 적이 없다면 
우리가 자유를 위한 자유로 사람을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을 자유로 이끄는 참 목적은 
그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그 분을 위해 지음받은 존재이다. 
사도 행전에 이런 말씀이 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행 7:22-25)
모세는 고통을 보았고 그것을 덜어 주고 싶었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도록 
부름받은 것도 알았다. 
심중에 그런 의식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가 없었기에 
그는 그들의 운명을 이끌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바른 목표가 없는 리더쉽은 아예 리더쉽이 없는 것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당시 모세는 지도자였고 목표도 있었으나 
그의 목표는 온전치 못했다. 
하나님의 계시가 없이는 기껏해야 백성을 자유의 
진정한 목표-하나님을 친밀하게 아는 것-가 없는 
공급의 땅으로 인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후미진 광야로 인도하셨다. 
두고 온 세상으로부터 모세의 마음을 잠잠케 하기 
위해서였다. 
광야에서 그는 하나님의 계시에 열망으로 
응답할 수 있었고, 준비된 마음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돌이켜 가서... 보리라."  '좋은' 일이라고 
무조건 참된 사역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40세 때 백성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던 
모세의 소원은 좋은 것이었으나 참된 사역은 아니었다.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악 쪽이 아닌 '선' 쪽에 끌렸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 즉 먹음직도 하고[먹기 좋아 보였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고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창3:6).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다.
 그러나 좋아 보이고 하나님처럼 되는 일 같지만 
실은 그분의 성품과 마음에 어긋나는 일이 무수히 많다. 
그분을 친밀하게 알 때에만 우리는 진정 좋은 것을 
분별할 수 있다.
- 거룩한 열정 / 존 비비어
샬롬^^
우리는 예수님에 관해서 아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아는 자가 되어야 겠습니다
주님의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는 다고 했습니다
늘 주님과 친밀함 속에서 살 때, 우리에게
참 평안과 참 만족이 있을 것입니다 ^^
주님과 친밀하기위해 늘 자신을 정결케 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행하며,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며 사는 자가 되기를
이번 한주간도 간절히 소망합니다 
모두 예수님 안에서 행복한 한주간 되세요 ^^
-은혜의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