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르틀리에 Paul Tortelier (프랑스) 프랑스의 파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첼로 공부를 하였는데, 10세 때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였다. 처음에는 R.L.피라르에게, 이어서 제라르 헤킹을 사사하였고, 1930년 16세 때 1등상을 받고 졸업했다. 이해 12월 파리에서 데뷔하였고, 장 위보와의 두오나 라무뢰 관현악단과 콜론관현악단의 독주자로서 활동하였다. 한편, 파리 음악원에서는 공부를 계속해 장갈론과 노엘 갈론에게 대위법과 작곡을 배웠고, 1935년에는 화성학 부문에서 1등상을 수상했다. 이해 몬테카를로의 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로 주자가 되었고, 1937년부터 1939년까지 보스턴 교향악단, 이어서 파리 필하모니 협회 관현악단, 더욱이 1945년부터 1946년까지는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의 수석을 역임하게 되었다.
1947년 이후는 독주자로서의 활동에 전념하였고, 이해 토머스 비첨 경이 지휘한 로얄 필하모니와 R.슈트라우스의 [돈 키호테]를 협연함으로써 영국에 데뷔하였다. 이것은 레코드(EMI의 SP 음반)에도 녹음되어 있는데, 이는 그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높이게 하였으며, 그 이후 유럽 여러 나라에서 널리 활약하였다. 1950년 프라도에서 시작한 카살스 음악제에도 연속 출연했으며, 미국에는 1952년 뉴욕에서 프랑크 마르탱의 [바라드]의 초연을 함으로써 데뷔하였다. 1955년부터 1년간 가량 이스라엘에서 은퇴 생활을 했으나 1936년 파리 음악원의 첼로과 교수로 임명되었는데, 그 후 12년간이나 그 자리에 있으면서 많은 영재를 키웠다. 또 1956년부터는 오케스트라의 지휘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그 최초의 기회는 이스라엘 필하모니의 연주회였다. 파리의 라무뢰 관현악단을 오랫동안 지휘하였고, 영국 실내관현악단과 그 밖의 유럽 여러 오케스트라에도 종종 객원 지휘를 하였다. 1965년에는 옥스퍼드의 바흐 음악제도 지휘자로서 출연하였다. 1971년 파리를 떠나 서독 에센의 폴크방 슐레의 교수가 되었다. 카살스, 메뉴인, 켐프, 마르탱과 그 뜻을 같이하여 음악 그 본래의 정신을 되찾자는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한 바가 있다. 토르틀리에는 작곡가로서도 알려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