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의 말이 나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1) - 로버트 레드포드
로버트 레드포드 (Charles Robert Redford Jr.)
“희망과 인내는 만병을 다스리는 두 가지 치료약이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한 자리이자 가장 부드러운 방석이다.” (Hope and patience are two sovereign remedies for all. The surest reposals, the softest cushions to lean on in adversity.)
Destiny words : 희망과 인내는 만병을 다스리는 두 가지 치료약이다.
그는 1980년에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남모르는 비애를 다룬 <보통사람들>로 전격 감독 겸업 선언을 한다.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을 타내면서 원숙한 영화의 열정을 드러내게 된다. 그런데 사실 그는 영화보다는 그림에 더욱 관심이 많은 화가 지망생이었다.
대학 1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파리 노트르담 거리에서 오가는 관광객의 즉석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열정을 불태웠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의 열의만큼 손님이 많지 않아 미국인들이 즐겨 찾는 클럽이나 바를 전전하면서 하루하루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배고픈 시절을 보낸다.
파리에서의 생활에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자 체계적인 회화를 공부하겠다는 계획을 품고 이태리 플로렌스로 건너간다. 청운의 꿈을 품고 미술학교에 등록하지만 그의 그림을 본 지도교수들은 이구동성으로 비판을 가한다. 그림을 그려서 성공할 수는 없다고 결론을 내린 그는 고향으로 돌아온 뒤 칩거 상태에서 매일 술만 마셔댔고 급기야 거의 자폐증 환자와 같은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암울한 시절 그에게 따사로운 봄 햇살과도 같은 구원의 손길이 비춘다. 청년 레드포드의 방탕한 생활을 남몰래 지켜본 주인공은 그의 2층에 하숙을 하고 있던 금발 미녀 롤라 폰 와제넌.그녀는 의욕을 상실한 그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친구가 되어준다.
그리고 어느날 로버트 버틴의 저서 『우울의 해부Anatomy of Melancholy』를 선물한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골방에 처박혀 대낮부터 술에 만취돼 있던 그는 롤라가 건네준 책자를 무심히 넘긴다. 그때 그가 한 문구를 읽게 된다.
‘희망과 인내는 만병을 다스리는 두 가지 치료약이다.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한 자리이자 가장 부드러운 방석이다.’
짧은 문장이지만 그에게 인생 목표를 정립하는 계기를 주게 된다. 일순간 자포자기 삶을 벗어버린 레드포드는 롤라의 권유를 받고 뉴욕 프래트 인스티튜트에 입학해 미술 공부를 재개한다. 이때 교양과목으로 ‘연극 디자인’을 공부하다 지도교수로부터 연기를 이수해볼 것을 권유받는다.
그는 아메리칸 드라마 아카데미에 입학한 뒤 자기에게 그림보다는 연기가 더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전력을 쏟아 결국 할리우드를 석권하는 개성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서부 무법자 선댄스 키드 역으로 뭇 여성들의 애간장을 태운 그는 극중 배역을 딴 독립영화 축제인 ‘선댄스 영화제’를 지난 1980년대부터 주최, 재기 발랄한 미래의 영화 인재를 육성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화가가 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젊은 시절 한동안 방황했던 레드포드는 결국 한 여인이 건네준 책자와 자신의 감추어져 있는 재능을 발견하면서 폭발력을 갖춘 연기자로 대성하게 된 것이다. 그에게 격려와 명구가 담겨 있는 책자를 선물하는 등 아낌없는 도움을 주었던 롤라는 그 후 레드포드의 아내가 되어 스타 배우를 만들어내는 숨은 내조자가 된다.
로버트 레드포드(Charles Robert Redford Jr.)
미국 중산층이 가장 선호하는 미남 배우 겸 감독 1937년 캘리포니아 주 산타 모니카 태생. 콜로라도 대학에서 아마추어 야구 선수로 활동했지만 음주문제로 퇴출당하고, 대학 졸업 후 프라트 예술연구소에서 그림을 전공한 뒤 유럽에서 무명 화가로 잠시 활동한다.
뉴욕 아메리칸 드라마 예술 아카데미를 이수한 후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외모를 바탕으로 TV와 연극에서 경력을 쌓아 나간다. 조지 로이 힐 감독의 서부 무법 영웅을 묘사한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에서 선댄스 키드 역을 맡아 출세 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어 <추억The Way We Were, 1973> <스팅The Sting, 1973> 등으로 할리우드 최고 흥행배우 타이틀을 부여받는다.
1980년 재능 있는 후배 영화인들을 발굴하기 위해 유타 주에 선댄스 연구소를 설립해서 연례 영화 축제인 ‘선댄스 필름 페스티벌’을 개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권위 있는 독립영화 축제로 성장시킨다.
미국 중산층의 문제점을 노출시킨 <보통사람들Ordinary People,1980>로 감독 데뷔를 선언. 이 작품으로 1981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타내는 저력을 발휘한다. 또한 브래드 피트를 발굴한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rough It,1992>과 미국 공영 퀴즈 방송에서 자행되는 비리를 꼬집은 <퀴즈 쇼Quiz Show,1994>로 상당한 연출력을 갖고 있는 재능꾼임을 입증시킨다. 1970년대 폴 뉴먼과 팀워크를 이뤄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할리우드 ‘버디 무비’장르 붐을 이끌어냈던 주역이 로버트 레드포드이다. |
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2) - 르네젤 위거
르네 젤위거(Renee Kathleen Zellweger)
“나는 인생의 격렬하고 잔인한 투쟁에서 삶의 기쁨을 발견한다. 그리고 나의 기쁨은 여행하는 데서 생긴다.” (I find my joy of living in the fierce and ruthless battles of life and my pleasure.)
Destiny words : 나는 인생의 격렬하고 잔인한 투쟁에서 삶의 기쁨을 발견한다.
남북전쟁 시절의 애환을 다룬 <콜드 마운틴>으로 편당 1,000만 달러(약 110억 원)를 챙긴 르네 젤위거.
전형적인 할리우드 미녀상은 아니지만 왠지 모를 푸근한 심성을 풍겨주는 그녀는 단번에 빠져들게 하기보다는 볼수록 상큼한 매력을 풍겨주는 주인공이다.
부친은 위스, 모친은 노르웨이 출신으로 텍사스 주 시골 소읍 카이티에서 태어났다. 돼지를 키우는 농가에서 성장한 그녀는 어찌 보면 문화생활과는 동떨어진 환경에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로 성공한 특이한 사례가 되고 있다.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뒤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LA로 건너온다.
처음에는 배우들이 단골로 드나드는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접시를 치우고 탁자에 널브러져 있는 담뱃재 닦는 일을 해낸다. “육체는 힘들었지만 때의 경험이 배우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죠. 식당에서 일하면서 저는 다양한 사람들, 특히 배우들의 행태를 관찰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살아 있는 연기 교본이 됐다고 봅니다.”
1996년 스포츠 에이전트 세계를 묘사한 <제리 맥과이어>에서 미혼모 역을 맡아 극중 탐 크루즈와 연분을 맺어가는 푸근한 역할을 열연해 주었다. 재학 시절 치어 걸, 스포츠클럽, 연극 동아리 등 다양한 체험을 한 것이 프로 연기자가 된 후 여러 배역을 순탄하게 연기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으며, 잠자기 전에 하루 동안 겪은 사건을 에세이로 작성하는 것도 감추어져 있는 취미 중의 하나이다.
뉴욕 최대 백화점 중의 하나인 시어즈 백화점의 화려한 풍광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아 이때 소감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투고했던 경험도 있다고 하는데, 채택이 안 돼 그녀의 무명 시절 글 솜씨를 훔쳐볼 수 없다는 것이 일말의 아쉬움이다.
이 시절 그녀가 잡지에서 어거스트 스트린드버그의 「미스 줄리아Miss Julia」의 서문에 기술되어 있다는 명구를 읽고 그녀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방랑벽을 자극하는 감흥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인생의 격렬하고 잔인한 투쟁에서 나의 삶의 기쁨을 발견한다. 그리고 나의 기쁨은 여행하는 데서 생긴다.’
화려하고 번잡한 나날이 늘 기다리고 있는 배우생활에서 여가는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촬영이 없는 날이면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자동차를 몰고 거리를 질주하죠. 특히 아직 오염되지 않은 자연 풍광을 간직하고 있는 고향 텍사스 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요. 가식적인 웃음을 강요하는 연예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원초적인 제 자신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자동차 여행, 근사하지 않아요?”
이런 취미생활 때문에 그녀는 여행에 관한 수필집을 늘 자동차 안에 두고 다닌다. 당연히 인생 교훈이자 전환점을 제공했다고 느끼는 경험을 여행 관련 독서를 통해 체득했다.
<제리 맥과이어> 이후 노처녀의 결혼 해프닝극 <브릿지 존스의 일기 1,2> 그리고 육감적인 시카고 나이트클럽 댄서 역으로 출연했던 <시카고> 등 짧은 배우생활 동안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아직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배우라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아요. 다른 연기자들처럼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을 갖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적도 없고요. 이 때문에 어찌 보면 지금까지 예상치 못한 행운으로 지금의 명예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 지금의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있습니다.”
르네 젤위거(Renee Kathleen Zellweger)
“목표를 세워 놓았다고 해서 인생이 그 목표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 때문에 저는 종착역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흘러가는 방랑자처럼 살고 싶습니다.”
1969년 텍사스 주 카이티 태생. 푸근한 외모에서 우러나오는 곰살맞은 연기로 남성 팬들에게높은 관심을 얻어내고 있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한 뒤 <텍사스 체인 살인사건4The Return of the Texas Chainsaw Massacre 4, 1994>에서 단역을 맡는다. 이 시기 매튜 맥커너히를 만나 그의 주선으로 <러브 앤 A 45Love and a 45, 1994>에 출연해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아내고,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눈에 띄어 <제리 맥과이어Jerry Maguire, 1996>에 출연하면서 단번에 시선을 끄는 신예 배우로 주목받는다.
<미, 마이셀프, 아이린Me, Myself & Irene, 2000>에서 짐 캐리와 컴비 연기를 통해 코미디 배우로의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너스베티Nurse Betty, 2000>에서 순수한 사랑을 갈망하는 간호 보조원 역으로 골든 글로브 여우상을 수여받는다.
이어 <브릿지 존스의 일기Bridget Jones's Diary, 2001>에서 30대 초반 노처녀의 결혼 갈망기를 보여주어 전 세계적인 히트작으로 만들어낸다. <시카고Chicago, 2002> <콜드 마운틴Cold Mountain, 2003> 등으로 취월장하는 연기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
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4) - 멜 브룩스
멜 브룩스(Mel Brooks)
“이봐 멜, 자네가 종이 있는 데까지 올라갔다면 그 종을 울리고 와야 하는 것 아냐!” Hey, Mel. If you are going to step up to the bell, ring it.
Destiny words : 종이 있는 데까지 올라갔다면 그 종을 울리고 와야 하는 것 아냐!
‘패러디의 대가, 상식의 허를 찌르는 영상 문법을 보여주고 있는 연출자.’ 감독 멜 브룩스는 우리가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갖게 되는 가치관을 철저하게 조롱하는 영화를 단골로 만들고 있는 감독이다.
‘사회 암적 요소인 불한당을 제압하는 데 온 열정을 바치고 있는 카우보이, 우수에 젖은 표정, 수많은 악의 무리를 단숨에 제압해 버리는 날렵한 총 솜씨, 뭇 여성의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외모와 세련된 매너.’ 이것이 서부극에서 보여준 정의 편에 서 있는 총잡이다. 그렇다면 멜 브룩스가 패러디 서부극을 표방하며 선보인 <불타는 안장Blazing Saddles, 1973>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담배를 피우면서 침을 뱉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시시덕거린다. 건장한 패거리들을 패고 도망치는 서부 사나이들은 이번에는 뼈만 앙상한 노인을 붙잡고 주먹과 발길질을 가한다.파격적이고 도발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 같은 시도는 어찌 보면 이단아를 자처한 멜 브룩스만이 시도할 수 있는 장면인지도 모른다.
“걱정이요? 말할 수 없이 크죠. 대다수 관객에게 각인된 어떤 이미지를 단숨에 깨트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시도인지는 짐작할 수 있잖아요. 특히 미국인들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서부 사나이들의 표상을 우스꽝스럽고 소심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석유통을 짊어지고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무모한 행동인지도 모르죠.”
발표하는 작품마다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의 영화는 왜 이렇게 삐딱한 시선을 고수하고 있을까?
“우리가 체면을 앞세워 바라보는 시선이 세상의 모든 면은 아니잖아요. 인간끼리 부딪치면서 벌어지는 풍속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부조리를 들추어내자, 이거죠. 신사복을 입고 근엄한 표정을 짓는 배우가 일상생활에서도 늘 깔끔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는 영화 속에서 보여준 규격화된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히려 일상에서는 상상을 깨는 일탈된 행동을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발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영화는 애초 우려를 뛰어 넘어 공개 즉시 뜨거운 이슈를 만들어낸다. 아마 관객들도 체면과 형식을 벗어버린 멜 브룩스 표 영화를 은연중에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멜 브룩스의 심술은 그 뒤에도 지속된다. <영 프랑켄슈타인>에서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진 와일더)의 약혼녀 엘리자베스(마델린 칸) 처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녀는 박사가 만들어낸 실패한 괴물(피터 보일)에게 성적 공격을 받는다. 음에는 공포감에 떨던 그녀가 괴물의 짙은 애무가 더해지자 이번에는 “이제야 내 인생을 달콤하게 해준 존재를 찾게 됐군요!”라고 유혹의 언어를 던진다.
“사실 영화를 공개할 때마다 ‘저, 감독, 미친 것 아냐?’라는 비난의 소리가 쏟아질 것 같아 조마조마 하죠. 그렇지만 지금까지 경험상 관객들은 확고한 가치관을 갖고 용감하게 영화를 만들어주는 감독을 은연중 갈망해왔던 것 같습니다. 저의 작품에 환호를 보내고 있는 것은 이런 잠재된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러한 상식의 허를 찌르는 연출 스타일을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불타는 안장>에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프로듀서 마이클 허츠버그와 작가 앤드류 버그만의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이 문제되지나 않을까? 비판이 가해질 것 같은데?” 로케이션 현장에서 남모르는 고충을 토로할 때 제작 전반을 지휘하고 있던 마이클 허츠버그는 전폭적인 신뢰를 말로 표현했다.
“이봐 멜, 자네가 종이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면 그 종을 울리고 와야 하는 것 아냐!”
“마이클의 말은‘이왕 시도를 했으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일단 밀어붙여 승부를 걸어보자’는 것이죠. 잠시 주춤했던 저의 소심함이 막 나갈 수 있는 대범함을 갖출 수 있도록 한 것은 단연 마이클의 이 말이 큰 힘이 됐습니다.”
오늘날 패러디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멜 브룩스. 그는 후배 영화인들에게 틈날 때마다 이런 주문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인들이 슈퍼맨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시민들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것을 해주기 때문 아닌가? 이처럼 관객들도 자신들의 욕망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이탈된 시도를 해내는 감독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제 가식을 털어버리고 미쳤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광적인 감독이 되십시오!”
멜 브룩스(Mel Brooks)
기존 관습을 뛰어넘는 패러디 1인자. 1926년 뉴욕 주 브룩클린 태생. 유태인들에게 전래되고 있는 유머와 잠언을 극중 대사로 즐겨 차용하고 있다. 그는 극중 악인들에게 턱수염과 구레나룻를 하고 등장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다. 모든 주인공은 남자로 설정돼 있다. 주인공이 등장해 옆 사람에게 상황을 설명하면 그 사람이 주인공에게 다시 분노감을 섞어서 응답하는 방식이 그만의 스토리 전개 방법이 되고 있다. 이어 여러 히트작 장면을 교묘하게 풍자하는 방식을 단골로 쓰고 있다. <프로듀서The Producers, 1968> <영 프랑켄슈타인Young Frankenstein, 1974> <로빈 훗Robin Hood : Men in Tights, 1993> 등의 히트작이 있다. |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존재” /코스비
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5) - 빌 코스비 |
빌 코스비(Bill Cosby)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You are more import!ant to yourself than you think you are.
Destiny words :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뿐 아니라 평범한 소시민들도 ‘학창 시절 선생님의 한마디 말씀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만큼 성장과정에서 스승의 칭찬 한마디는 그 어떤 자양분보다도 강력한효과를 발휘한다.
시트콤 ‘코스비 가족’으로 유명세를 얻었던 흑인 코미디언 겸 연기자 빌 코스비는 1940년대 펜실베이니아 주 초등학교 4학년 재학 시절 사라 맥킨니 선생이 들려준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라는 격려의 말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준 조언으로 흔쾌히 꼽고 있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코스비가 성장하던 1940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미국 전역에서는 흑인과 백인 간의 인종 차별이 극에 달하고 있을 때였다. 흑인 학생들이 생각하기에 대다수 백인 선생들은 백인보다는 흑인 학생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 ‘사랑의 매’라는 명분을 걸고 가해지는 체벌은 거의 구타 수준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인간에 대해 증오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국어 수업시간에 유명한 명언을 학습하게 된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이 명구는 ‘좋은 지적을 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실행시키기는 어렵다’라든가,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평양 감사도 하기 싫으면 그만이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생에게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을 지적받은 코스비는 “물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말이 냇가에 가서 목을 축이지 않았을 때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아마 물이 더럽거나 오물이 둥둥 떠다니는 경우 그런 거부 행동을 나타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선생님, 말이 자신을 물가로 데려온 사람 자체가 싫어 물을 마시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당돌하지만 어찌 보면 기존의 관념을 뛰어넘는 코스비의 해석에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과 학생들은 놀라움과 함께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체벌을 가하는 선생들에 대한 깊은 반감이 결국 그런 식으로 드러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잠언이 있듯이 백인 선생들이 사사로운 감정을 섞어 흑인 학생들에게 가한 정도를 넘는 폭력은 이토록 세상과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만드는 원인이 됐다. 하지만 세상사는 음지가 있으면 그만큼 밝은 양지가 있는 법, 인간에 대한 불만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코스비의 응어리진 마음을 단번에 풀어준 스승이 바로 사라 선생이었다.
사회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나 아니면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소시민이라고 할지라도 누구나 마음 한편에서는 자신의 성장과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이 한두 명쯤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학창 시절 교사가 여러 학생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인 망신을 주었을 경우 자존심이 상해 며칠 동안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고 회상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이것을 단순히 성장통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당사자에게 던져주는 정신적 상흔은 매우 크다.
코스비가 영원한 스승으로 주저하지 않고 꼽는 사라 선생은 흑백 학생을 구분하지 않고 체벌을 가해야 할 경우 반드시 “너, 외투 보관소로 와!”라는 단호한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시 외투 보관소는 사라 선생이 자신의 상의를 걸어 놓고 있는 교무실 뒤편 인적이 드문 조그만 공간이었다. 이곳으로 호출받은 학생들은 “너 또 그런 행동을 할래? 네가 벌을 받고 있는 이유를 알겠지?”라고 조목조목 지적을 받은 후 엉덩이를 맞았다. 그리고 사라 선생은 반드시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라는 자기애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격려의 말을 건냈다.
그의 존재를 알려준 시트콤 ‘코스비 가족’을 통해서 늘 반복하는 대사 중의 하나가 “존경하는 선생님, 제자들에게 잔소리라고 느낄 정도로 칭찬을 많이 해주십시오. 혹시 반응이 없다고 해도 실망하지 마시고 10년, 20년, 아니 30년 칭찬을 해주십시오. 저는 선생님의 그 같은 기대감을 충족시켜 드려야겠다는 일념이 머릿속에 각인돼 지금 유명 코미디언으로 선생님을 웃겨 드리고 있습니다. 선생님!”이다.
빌 코스비(Bill Cosby)
시트콤 장르를 정착시킨 미국 최고의 흑인 코미디언. 1937년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태생. TV 시트콤 ‘코스비 쇼’로 무려 30여 년 이상 인기를 누렸던 엔터테이너 겸 코미디언. 템플 대학 재학 시절 파트타임으로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바에서 재담을 가미한 스탠딩 개그를 시도해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이룩해낸다. 또한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면서 재능을 인정받는다. <아이 스파이I Spy, 1965>로 에미상 남우상을 수여받는다. 이어 <빌 코스비 쇼The Bill Cosby Show, 1969>에서 능청스런 교사 역을 열연해 확고한 스타덤에 오른다. 여세를 몰아 영화 <업타운 새터데이 나이트Uptown Saturday Night, 1974>에 출연하면서 상업적 호응 지수를 확대해나간다. |
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6) - 성룡
성룡(成龍)
“도움은 질병, 재앙, 죄악을 고치는 특효약이란다.” Help, the patent medicine for disease, disaster, sin.
Destiny words : 도움은 질병, 재앙, 죄악을 고치는 특효약이란다.
‘아시아의 거대한 용龍.’ 배우 겸 스턴트 맨 성룡은 이소룡 이후 홍콩 출신으로 가장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연기자다.1954년 홍콩의 빈민가 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7살 때 경극학교에 입교해 10여 년 동안 춤, 노래, 쿵푸, 경극 등 연기자가 되기 위한 체계적인 훈련을 이수한다.
바쁜 배우생활 와중에도 그는 캄보디아 지뢰 희생자 돕기 자선 대사, 싱가포르 금연 대사, 유엔 평화 대사 등 외부에서 주어지는 공직을 10여 개 이상 맡고 있다. 그가 빈곤, 질병, 문맹 퇴치 문제에 깊이 관여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겪은 사건이 결정적 요인이 됐다. 경극학교 재학 시절 그는 매우 가난하여서 의복이나 먹을거리 등을 매달 찾아오는 적십자 구호품에 의지하고 있었다. 10살 무렵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적십자 구호품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성룡은 자기 차례가 오자 옷, 신발, 우유가루를 신부神父로부터 한아름 받게 된다.
“도움은 질병, 재앙, 죄악을 고치는 특효약이란다.” 성룡은 어린 시절 인자한 표정의 신부가 자기에게 부탁한 말을 잊을 수 없었다.
1978년 원화평 감독의 <취권> 시리즈와 <배틀 크릭>을 연이어 히트작으로 만든 이후, 1981년 할리우드로 건너가 카레이서들의 치열한 승부 세계를 다룬 <캐논볼The Cannonball Run>에 출연하면서 서서히 명성을 얻어 나간다.
1986년 쿵푸를 배경으로 한 액션 오락극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기를 구축하고 있던 성룡은 여세를 몰아 <용형호제>를 유고에서 촬영하고 있었다. 이때 그는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건너편에 있는 나무로 이동하는 장면을 촬영하다 그만 추락, 갈비뼈 여러 개가 부서지는 중상을 당한다. “스탭들은 제가 죽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죠.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어요. 아! 내가 어린 시절 신부님하고 약속한 일을 바쁘다는 핑계로 전혀 손을 대지 않았구나. 내가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그는 병원에서 퇴원하는 즉시, 기근과 폭발물, 질병으로 희생당하고 있는 각국의 어린아이들을 돕기 위한 자선단체 ‘성룡 재단’ 설립을 본격화한다. 유럽 및 아시아권 배우들이 갈망하는 할리우드 진출에도 성공해 <러시아워> 시리즈, <80일간의 세계 일주> 등을 히트작으로 만들었고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시상자로 초대받는 등 그 어떤 아시아권 배우들도 받지 못한 스포트라이트를 누리고 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한 영화배우로 현장을 지키겠다고 다짐하지만, 그는 내심 “높은 빌딩을 건너뛰고, 질주하는 자동차를 추격하고 수십 명의 젊은이들을 상대로 쿵푸 액션을 보여주는 것에 점점 버거움을 느낀다”고 토로하고 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으세요? 남을 위해 돕는다는 것과 평화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평화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보다 많은 배려와 관심을 갖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시기와 질투에서 발생하는 세상의 온갖 부조리는 서서히 사라져 우리의 삶이 보다 안락하고 즐거울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룡의 구상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원대하다. 사랑과 평화 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성룡 재단을 선진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 각국에 설립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상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각국 청소년들을 초빙한 영상 전문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 중 대안학교는 이미 중국에 20여만 평의 부지를 확보해 신축 공사에 들어갔다.
“문호는 개방되어 있습니다. 물론 한국 청소년 중 영화를 지독하게 좋아한다면 일단은 입학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은 되는 거죠. 일단 첫해는 100여 명 정도를 모집해 숙식을 함께 하면서 각국 문화의 다양성을 배우고 영화를 만들고 또 자연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학습을 병행할 겁니다. 이 같은 청사진에 동참하려는 독지가가 100명, 1,000명 그리고 10,000 명 계속 증가해 나간다면 세상은 훨씬 좋아질 거라고 믿습니다. 어때요, 저의 청사진이 무척 희망적이지 않나요?”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 배급된 우유를 허겁지겁 먹고 구호품 옷을 입고 다녔던 10살 소년 성룡. 그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의식주를 흔쾌히 배급해 주었던 신부의 조언을 실천하느라 인생 후반기를 매우 열정적으로 보내고 있다.
빠른 움직임을 생명으로 하는 스턴트 배우 출신 성룡은 이제 평화의 대사를 자임하면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확대시키는 전령사 역을 실천해가고 있다.
성룡(成龍)
아시아 출신 최고의 쿵푸 스타 1954년 홍콩 태생. 쿵푸 연마를 통해 축적한 유연한 몸놀림을 내세워 액션, 오락극의 1인자로 군림하고 있다. 신작 촬영에 열성을 다하는 겸허한 자세와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코믹적 재능을 담아 지구촌 오락 영화계를 석권해 나가고 있다. 데뷔 이래 해마다 신작을 발표하는 열정을 드러내고 있다. 2005년에는 진시황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신화>에 출연, 가벼운 오락 전문 배우가 아닌 심도 있는 연기력을 갖고 있는 배우라는 점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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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7) - 숀펜
할리우드의 악동 숀펜의 이야기 |
숀 펜(Sean Justin Penn)
“우리는 부끄러움, 폭력에 대한 공포 그리고 타협에 의해 사물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 스스로를 혹독하게 감시해야만 한다.” We all get blindsided by the shame and terror and by compromise, but you have to monitor yourself.
Destiny words 이제 스스로를 혹독하게 감시해야만 한다.
‘할리우드 악동’ 범죄자, 법의 허점을 악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법조인, 이득을 위해 친구에게도 총을 겨누는 암흑가 조직원, 범죄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 거짓 눈물을 쏟아내는 개선의 여지가 없는 인간 말종. 관객들에게 분노감을 자아낼 정도로 발군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주역이 숀 펜이다.
세월의 편린이 묻어 있는 주름살 패인 얼굴, 사회와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인상을 주는 날카로운 눈빛과 깡마른 외모를 신체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는 숀 펜은 실감 나는 연기로 자기 영역을 꾸준히 개척해 나가는 주인공이다.
“이제 할리우드는 인간 본성의 의미와 영화 예술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감동보다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온갖 말초적인 짓을 서슴없이 하는 타락한 곳으로 전락했습니다.”
<생도의 분노>로 탐 크루즈가 스타덤에 올랐고 <나쁜 녀석들>로 윌 스미스가 1급 배우로 성장했을 때, 숀 펜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출연했다는 것조차 가물가물할 정도의 조연급 배우로 화면 한 귀퉁이를 채우고 있었다. 성마른 느낌을 주고 있는 외모 때문에 10여 년 이상 무명의 설움을 겪어야 했던 그는 서둘지 않고 차근차근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내면서 이제는 감독 겸 배우로 수많은 호남형 배우들을 제압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배우들도 이제는 예술적 본질보다는 출연료가 얼마나 되는가?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게 비쳐 보이는가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난 이렇게 영화계가 변질돼 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뼈 있는 입바른 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할리우드의 경도된 상업성에 칼날을 세우고 있는 숀 펜은 어찌 보면 반항아적인 이단아 역을 맡아 그나마 영상 세계의 풍요로움을 지속시켜 나가고 있는 숨은 주역인지도 모른다. <데드 맨 워킹>에서는 수녀를 통해 자신이 자행한 범죄를 감쪽같이 속이려다 발각되는 파렴치한 사형수 역을 맡아 관객들의 공분公憤을 불러 일으킨다.
‘관객들은 그의 연기를 보면서 마치 그가 현실에서도 극중 배역과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역할에 깊이 몰두해 혼신을 다해, 보는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는 숀 펜만한 배우가 없다’는 것이 할리우드 영화계가 보내는 이구동성의 칭송이다.최근작 <아이 엠 샘>에서는 정신 능력이 7살에 불과한 저능아 아버지로 출연했다. 그는 극중 보건 당국이 저능아 상태에서 아이를 양육할 능력이 없다며 7살 된 딸을 사회 수용 시설로 보내려 하자 법정 투쟁 끝에 정신 질환자도 자녀를 돌볼 수 있다는 것을 입증시켜 공감의 박수를 얻어냈다.
이처럼 그가 보여준 연기는‘저건 영화 속 이야기네’라며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가공의 이야기가 아닌 ‘정말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네’라는 공감의 박수갈채를 얻을 만큼의 진솔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진정한 예술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 영화계는 돈을 위해 예술이 존재하고 일선에 있는 연기자들이 탐욕스런 물질적 욕망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나 자신도 돈을 배척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대중예술 종사자가 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 풍속도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비록 영화 속에서는 파렴치한 배역을 단골로 맡고 있지만 성격파 배우로 칭송받고 있는 숀 펜은 나름대로 확고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배우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이를 입증시키려는 듯 그는 “무명 시절의 열정이 어느덧 풍족한 출연료에 휘말려 식어가는 동료 연기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서슴없이 공개한다.
책 읽기를 즐겨 하는 숀 펜은 이런 지적 축적이 연기 폭을 넓히는 근본 바탕이 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에게 인생 전환을 가져다 준 계기나 좌우명 등도 모두 독서를 통해서 습득했다.
‘우리는 부끄러움, 폭력에 대한 공포 그리고 타협에 의해 사물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 스스로를 혹독하게 감시해야만 한다.’
작가 윌리암 샤로안이 역설한 『세상 읽기』의 한 가지 방식은 연기자들에게는 끊임없이 자기 규율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명구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여 자기 혁신의 계기로 삼고 있는 대표적 할리우드 배우가 바로 숀 펜이다.
숀 펜(Sean Justin Penn)
천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할리우드 악동. 1960년 캘리포니아 주 산타 모니카 태생. 40대 연기자 중 공작새와 같이 천의 연기를 보여주는 주인공으로 정평이 나 있다. 연기 초년병 시절 출연작인 <생도의 분노Taps, 1981>에서는 군사 훈련학교에서 자행되는 엄격한 교육 정책에 반기를 드는 열혈 청년 역과 <리치몬트 연애 소동Fast Times at Ridgemont High, 1982>에서는 수다스런 서핑 선수로 출연하면서 서서히 자신의 연기력을 드러낸다. 미국 국가 정보를 소련에게 팔아넘기려다 체포되는 냉전 스파이 극 <펠콘 앤 더 스노우맨The Falcon and the Snowman, 1985>을 비롯해 마돈나와 팀워크를 맞춰 출연한 <상하이 서프라이즈Shanghai Surprise, 1986> 베트남 전쟁터에서 광기를 부리는 미국 병사 역을 맡은 <전쟁의 사상자들Casualties of War, 1989> 등으로 중견 배우로 부상한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는 두명의 형제가 보는 세상 풍속도를 다룬 <인디안 러너The Indian Runner, 1991>로 감독 데뷔 선언을 한다. 이어 홀로 딸을 키우는 정신 지체아 아버지 역을 맡은 <아이 엠 샘I am Sam, 2001>에 이어, 딸의 죽음을 복수하는 고뇌에 찬 아버지 역을 보여준 <미스틱 리버Mystic River, 2003>로 아카데미 남우상을 따내며 정상의 배우임을 입증시킨다. |
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8) - 스티븐 스필버그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Allan Spielberg)
“젊은이, 이곳 영화계는 한 번 실패하면 그것이 영원한 실패로 낙인찍어 바로 내동댕이쳐 버리는 곳이오. 그렇지만 난 그대를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오. 당신은 이곳에서 나와 함께 영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오.” There are a lot of places in this industry that will abandon you the first time you fail and you will fail. But I won't abandon you. You will always have a job here.
Destiny words : 당신은 이곳에서 나와 함께 영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오.
‘20세기 영화계가 탄생시킨 최고의 영상 재능꾼!’
스티븐 스필버그는 인간의 상상력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이야깃거리를 영화 소재로 각색해 신작 발표 때마다 전 세계 흥행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천재 감독이다. 편당 수익률 2억 달러(약 2,200억 원)를 가뿐히 넘기고 있는 그도 두렵고 가슴 졸이는 무명 시절을 겪었다.
부친으로부터 생일 선물을 받은 8미리 카메라를 통해 움직이는 마술과도 같은 영상세계에 푹 빠진 스필버그. 그는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면서 온통 영화 만들기를 생각하는 시네마 키드가 된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만든 수많은 습작품은 청소년 대상 영상 페스티벌을 석권하면서 영상계의 ‘무서운 아이’임을 입증시킨다.
1954년 8살 때 부모와 함께 관람한 월트디즈니 제작의 <데이비 크로켓Davy Crockett, King of the Wild Frontier>에서 데이비 크로켓이 외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면 그것을 밀고 나가라!”는 대사는 그의 어린 시절 가치관을 형성시키는데 일조한 명언으로 각인된다. 롱비치 대학 영문과 재학 시절, 그가 만든 단편영화 <앰블린Amblin>은 그의 인생을 바꾼 운명적 작품이 된다. 당시 이 필름을 우연히 보게 된 유니버셜 TV의 CEO 시드 샤인버그는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는 속담처럼 스필버그가 범상치 않은 재능을 갖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메이저 영화사 중역의 면담 요청을 받은 무명의 영화학도 스필버그는 떨리는 가슴으로 육중한 25층 검은색 유니버셜 빌딩으로 들어선다.
“시드 사장을 만나러 갔던 그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초조하고 가슴 떨리는 날이었습니다” 하고 회고하는 스필버그. 중역 회의를 끝내고 나온 시드는 접견실에서 한껏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스필버그에게
“당신의 재능을 높이 사겠소. 우리와 7년 계약을 맺고 TV용 영화를 만들어 봅시다”라고 선뜻 제안한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스필버그는 기쁨보다는 ‘1년 남은 대학을 졸업하고 싶다’는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것은 스필버그가 무사히 대학을 졸업했으면 한다는 부친의 평소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이에 시드 사장은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젊은이, 이곳 영화계는 한 번 실패하면 그것이 영원한 실패로 낙인찍어 바로 내동댕이쳐버리는 곳이오. 그렇지만 난 그대를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오. 당신은 이곳에서 나와 함께 영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오.”
스필버그는 시드 사장의 전폭적인 후원을 등에 업고 만 27세에 발표한 식인 상어극 <죠스>로 블록버스터 신화를 만든 이후, 외계인과 지구 소년과의 우정을 다룬 로 할리우드 최고 감독으로 부상하게 된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Allan Spielberg)
21세기 흥행계의 귀재 1946년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태생. 할리우드 최고 흥행 감독. 1975년 여름 휴양지를 공격하는 상어 이야기를 다룬 <죠스Jaws>를 필두로 해서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1977> <레이더스Raiders of the Lost Ark, 1981> 등의 오락물,흑인 자매의 수난사를 다룬 <칼라 퍼플The Color Purple, 1985>, 2차 대전 당시 독일에 의한 유태인 학살극을 고발한 <쉰들러 리스트 chindler's List, 1993> 등 오락극과 묵직한 작품을 동시에 제작하는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최신작은 화성인의 지구 공격을 극화한 <우주 전쟁War of the Worlds, 2005>. 현재 <인디아나 존스4Indiana Jones 4>와 1972년 뮌헨 올림픽 당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의 이스라엘 선수 테러를 다른 <뮌헨Munich>을 공개, 시대의 혜안을 갖고 있는 연출가임을 재차 입증시켰다. |
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9) - 아놀드 슈왈제네거 |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행동양식을 머릿속에 그리고, 계획을 실행할 때는 모든 역량을 투입하라.” Set a goal for yourself. Visualize your plan of action to reach that goal and put
Destiny words 계획을 실행할 때는 모든 역량을 투입하라.
‘할리우드 액션 배우에서 캘리포니아 주지사까지!’
오스트리아 촌마을 출신의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어린 시절부터 ‘반드시 출세하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세웠고 마침내 미국에서 그 뜻을 이룬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적 연예인이다.
10대 시절 축구에 푹 빠져 있던 아놀드는 우연히 <헤라클레스>를 보고 그 영화에 주역으로 출연한 미스터 유니버스 출신 레그 파크의 근육질에 매료돼 곧바로 아령을 들기 시작한다.
“또래 사내녀석들이 미모의 여배우 사진을 자기 방에 도배해놓을 동안 저는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는 육체미 대회 선수들의 모습을 붙여 놓았죠. 이것을 보고 부모님은 저를 동성애자로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이 시절부터 그는 육체미 선수들의 최고 목표인 미스터 월드와 미스터 유니버스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기 위한 체계적인 훈련을 시도한다. 이 시기 만난 육체미 감독 조 와이더는 아놀드가 미스터 유니버스 우승 타이틀 5번, 미스터 올림피아 타이틀 7번을 따낼 수 있는 정신적 스승이 된다.
조는 아놀드의 꿈을 성취하기 위한 3가지 목표를 정했다. 첫째,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라. 둘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행동 양식을 머릿속에 그려라. 셋째, 계획을 실행할 때 모든 역량을 투입하라.
결국 아놀드의 의지와 코치 조의 훈련 방침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오스트리아 촌놈 아놀드는 보디빌딩계를 완전 석권한다. 더 넓은 청운의 꿈을 펼치기 위해 19세인 아놀드는 가방만 달랑 들고 남 캘리포니아로 건너온다. 젊은 시절의 우상 레그 파크처럼 배우로 출세하고 싶었던 그는 할리우드로 건너오면서 ‘독일식 거센 억양’, ‘190cm에 90㎏이 넘는 거구’, ‘머슴과 같은 투박한 외모’ 등 3가지가 배우로 변신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놀드는 육체미 선수로 대성하기 위해 썼던 3가지 목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은막을 장악할 5개년 계획을 세웠습니다. 급할 것 없다는 여유를 부렸죠. 저는 육체미 스타 100만 명 중 희귀한 존재라는 것을 반드시 증명할 거라는 야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TV 영화와 방송 드라마 단역을 거쳐 스티븐 스필버그의 추천을 받아 에드 프레스맨이 프로듀서를 맡은 <코난>에 전격 캐스팅된다. 비평가들은 ‘근육의 크기는 두뇌와 반비례한다’, ‘바위 덩어리 같은 딱딱한 연기’라고 조롱을 보냈지만 흥행가에서는 무려 1억 달러가 넘는 대박급 히트작이 된다. 여세를 몰아 <코만도>에서 그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사슴의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을 담아 칼날을 세웠던 비평가 집단으로부터 ‘따스한 유머를 갖고 있는 근육질 스타’라는 반전된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 이어 인정미 없는 무시무시한 유인원類人猿 같은 기계인간으로 출연한 <터미네이터>가 블록버스터 히트작이 되면서 그는 탄탄한 개성 스타로 자리를 잡아간다.
그는 대사가 별로 없는 <터미네이터> 시리즈 외에 자신들을 버린 친모를 찾아 가기 위한 해프닝을 다룬 <트윈스>, <유치원으로 간 사나이> <주니어> 등에 출연하면서 유머 감각이 풍부한 배우라는 것을 입증시킨다.
편당 1,000만 달러(약 110억 원)를 받는 흥행 배우로 올라선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국 정가의 진보주의 정치인인 케네디 가문의 조카딸 마리아 슈라이버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그리고 보수층의 집결지인 캘리포니아 주지자로 전격 당선됨으로서 배우에서 정치인으로 변신에 성공한다.
미국으로 이주한 지 20여 년 만에 일구어낸 소설 같은 성공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일찌감치 인생 목표를 세웠고 자신에 대한 끝없이 애착과 자기개발이 가져온 성공 신화라는 점에서 오늘날 많은 청소년들에게 살아 있는 성공 교과서로 추앙받고 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Arnold Alois Schwarzenegger)
오스트리아 촌놈, 할리우드 액션 배우에서 중견 정치인으로 변신. 1947년 오스트리아 태생. 보디빌딩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성공된 인생을 보장 받게 된다. 1965년 고국에서 1년간의 병역 의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이주, 탄탄한 근육질을 앞세워액션 B급 영화에 단골 캐스팅된다. 다소 둔해보이는 체력과 억센 사투리, 볼품없는 외모 등으로 수년 동안 값싼 액션물에 얼굴을 판다. <코난Conan the Barbarian, 1981>으로 서서히 스타덤에 오른 그는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 1984> 시리즈로 편당 1,000만 달러가 넘는 개런티를 보장받는 흥행 배우로 부각된다.
대중적 인기 기반을 등에 업고 2003년 10월 7일 치러진 캘리포니아 주지사 보궐선거에 공화당으로 출마해서 당선, 화려한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
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10) - 안젤리나 졸리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 Voight)
“사랑은 금방 잊혀지는 작은 입맞춤이나 미소를 안겨주는 자비, 친절한 시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사 그리고 수없이 많은 유쾌하고 온화한 느낌의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진다.” Love is made up of minute fractions―the little soon forgotten charities of a kiss or smile, a kind look, a heartfelt compliments and the countless infinitesimals of pleasurable and genial feeling.
Destiny words : 사랑은 작은 입맞춤, 자비, 친절한 시선, 찬사 그리고 수없이 많은 유쾌하고 온화한 느낌의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진다.
‘별 5개짜리 최고급 할리우드 호텔과 최소한의 편의 시설조차 없는 난민촌을 오가는 여인.’
웬만한 남성쯤은 단번에 제압할 듯한 거친 헤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주인공이 안젤리나 졸리이다. 악역 전문 배우 존 보이트와 역시 배우 출신 마셀리니 베르뜨랑 사이에서 태어난 안젤리나 졸리는 어린 나이에 부모의 이혼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반항기 가득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 정신 요양원에 수감된 10대 소녀 리사 역을 열연, 다음해 아카데미 조연 여우상을 따낸다.
“아카데미 수상 여배우라는 타이틀은 나에게 별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내가 경험했던 일들을 반추해 영화 속에서 표현하는 일이 흥미 있을 뿐입니다. 어두운 성장과정을 겪었지만 지금 나를 필요로 하는 장소나 사람이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연기 외에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입증하려는 듯이 그녀는 풍토병을 염려해 아프리카 기아 난민촌 방문을 꺼려 하는 여타 할리우드 배우들과는 달리 스케줄이 허용하는 한 수시로 방문해 극빈자 퇴치운동을 벌이는 동시에 태국·미얀마 등 전쟁으로 고아가 된 동남아시아 국경지대 난민 캠프도 적극 찾고 있다. 세계 난민의 날 자선 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졸리는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아시아·아프리카 소년 소녀들을 양자로 입양해서 친자식처럼 키우고 있는 고운 심성을 자랑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스스로를 학대하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제가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 자격이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었어요. 하지만 유엔 친선 대사로 캄보디아의 한 고아원을 방문해서 지금 키우고 있는 수양아들 매덕스를 만나게 됐죠. 전 그 아이가 저를 보고 방끗 웃는 모습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죠. 생후 7개월 때 정식 입양을 해서 키우고 있습니다. 저는 매덕스를 키우면서 어머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뭇 남성들에게 매력적인 여성으로 받아들여지기를 거부하고 있는 그녀는 <툼 레이더> <미스터,미세스 스미스Mr. & Mrs. Smith, 2005> 등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거칠고 무자비함도 감추지 않고 있는 여성으로 등장했다.억눌린 감정을 폭발시키는 듯한 이런 배역을 선호해서 그런지 그녀는 한때 피를 나누어 마시면서 엽기적인 애정을 과시했던 빌리 밥 손튼과는 “남편과 손을 맞잡고 유유자적하게 영화나 보러 다닐 여유가 없다”고 폭탄선언을 했고 결국 두 사람은 파경을 맞게 된다.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아버지, 어머니가 된다고는 보지 않아요. 가족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과 사랑을 투자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남모르게 눈물짓는 모습을 많이 지켜보았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가족은 부모의 이기심이 아닌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해서 얻어지는 관계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녀가 난민 구호에 뛰어든 것도 알고 보면 ‘부모가 자식에게 보내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감정이다.
‘사랑은 금방 잊혀지는 작은 입맞춤이나 미소를 안겨주는 자비, 친절한 시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사 그리고 수없이 많은 유쾌하고 온화한 느낌의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진다.’
촬영장 틈틈이 읽었던 사무엘 테일러 코울리지의 에세이 『프렌드』에서 읽은 이 명구는 그녀가 아프리카, 아시아 난민촌을 방문해 관심과 사랑을 갈망하는 어린 소년 소녀들에게 애정의 손길을 보내는 데 결정적 자극이 됐다. 졸리는 캄보디아 지뢰밭에서 하루에도 수십 명의 아이들이 폭발물로 인해서 신체 불구가 되고, 아프리카에서 어린 생명들이 굶주림에 목숨을 잃어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동안 세상을 너무 좁게 살아 왔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배우로서 부와 명예의 성(城)에 안주하면서 평안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그녀가 왜 이토록 힘든 일에 온 정열을 쏟고 있을까? 비행청소년 시절 남아도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한 책에서 ‘살아 있는 것이 고맙다고 느낀다면 그대의 희망을 나누어 주어라!’라는 구절를 접했다.
“희망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내는 일이 아닐까요? 지금 당장 바깥세상을 둘러보면 나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습니다. 이곳을 찾아가면 그들은 내가 유명 배우인지 모릅니다. 단지 먼지를 뒤집어쓰고 봉사활동을 하는 유용한 여자로 취급당합니다. 이런 것이 저에게는 아카데미 트로피보다 더 소중합니다. 인간끼리 진심을 소통하는 이런 체험에 아주 만족합니다.”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 Voight)
굶주린 난민촌에 사랑의 의미를 전파하고 있는 은막의 헤로인. 1975년 캘리포니아 주 LA 태생. 아카데미 수상 배우인 존 보이트의 딸. 부친이 갖고 있는 성격 배우의 기질을 모두 물려받아 웬만한 남성 서너 명은 간단히 제압하는 강한 여성 역할을 단골로 맡고 있다. 뉴욕에 있는 명문 연기학교 리 스트라스버그 극단 출신. 늘씬한 체구를 내세워 런던, 뉴욕, LA 등지에서 패션모델 활동을 했고 팝 가수 ‘미트로프Meatloaf’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 ‘안토넬로 벤디티Antonello Venditi’‘레몬헤즈The Lemonheads’ 등의 뮤직 비디오 모델로도 출연했다. 정신병동에 수감된 20대 여성 심리를 연기한 <처음 만나는 자유Girl, Interrupted, 1999>로 연기력을 인정을 받는다. 게임을 극화한 <툼 레이더Lara Croft : Tomb Raider, 2001> 시리즈를 비롯해 <알렉산더Alexander, 2004> <미스터, 미세스 스미스Mr. & Mrs. Smith, 2005> 등에서 남성들의 완고한 성역을 개혁하려는 여전사의 이미지를 보여주어 갈채를 얻어내고 있다.남성 잡지 「FHM」을 비롯해 「피플」 등에서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 100’에 단골로 추천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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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yoobye님 블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