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에 오붓한 길을 토끼 한 마리가 쫄랑쫄랑 가다가 어흥! 덩치가 산만한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다행히도 토끼는 교회를 열심히 다녀는 신자여서 무섭기는 하였지만,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저 호랑이의 손에서 저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그런데 그렇게 기도를 드리던 토끼는 호랑이의 소리를 듣고 그만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호랑이도 교회를 다니고 게다가 장로여서 “주님, 부족한 호 장로의 기도를 들어주옵소서.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벌써 삼일 째 굶식하며 기도하였사옵나이다”라고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거든요.
과연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에 응답하였을까요? 하하..
이처럼 때때로 한편의 기도에 응답하면 저편이 아프고, 저편의 기도에 응답하면 이편이 아픈 경우가 있지요. 가령 노사간의 분쟁의 경우에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겠지요.
또 가령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들은 아마도 주님의 기도와는 달리 “예수님을 악한 자의 무리에서 구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였겠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참된 기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 본을 보이신 것은 바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주님의 기도이지요. “아버지여,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물리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주님은 “그러나 나의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당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지요.
실제로 혼의 기도에서 영의 깊은 기도 속으로 성령 안에서 몰입하면, 우리의 영은 혼적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절규에 가까운 기도를 드리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선한 하나님이, 거룩한 성령이 우리의 영으로 하여금, 혼적인 우리의 욕망보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그토록 기도할까요.
말씀을 기록하기 위해 이 물음을 던지며 잠시 기도한 가운데 들려주신 주님의 음성에서 그 답을 찾으시고, 혼적 욕망의 기도보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영의 기도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그것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기쁨을 누리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평강과 축복을 주신다. 하나님은 생명이니라”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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