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상봉(都相鳳 1902∼1977)
서양화가. 함경남도 홍원(洪原) 출생. 1927년 일본 도쿄[東京]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심사위원·한국미술가협회위원장·예술원회원 등을 지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미술가 모임 서화협회전에 참가하였는데, 당시의 작품은 대상 재현에 충실하고 서양화기법을 통해 한국의 정서를 표현하였다. 8·15 이후는 엄격한 구조와 장식적 색채, 사실적 자연주의를 결합하였다. 말년에는 주로 정물화·풍경화를 그렸다. 작품으로 《한정(閑靜, 1949)》 《항아리와 국화(1954)》 등이 있다.
정물화는 고리타분한 주제다. 꽃이라든지, 백자라든지, 식탁 위 과일 바구니에서 도대체 무슨 감오?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도천(陶泉·도자기의 샘)도상봉(都相鳳·1902∼1977)의 정물화는 다르다. 대상이 볼 때마다 새롭다. 편하고 따뜻하다. 손녀이자 서양화가 윤희씨(41)는 “이번에 할아버지 작품을 다시 보면서 그리는 대상과 화가와의 진지한 관계 속에서 비로소 그림이 생명력을 얻는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고 말했다. 뚫어지도록 오래 봐야 움직임이 감지되는 대상이 있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말이다. 도상봉이 그린 백자를 오래 보면 미묘한 움직임이 전해온다. 극도로 단순화한 선 처리와 음영은 무한의 깊이를 전해준다. 작가가 대상에서 비밀스럽게 포착한 아름다움이 저것이었구나 하는 울림이 전해진다. 정물화라고 해서 대상을 모사(模寫)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만이 갖고 있는 시선으로 사물을 재창조했다는 느낌이다.
비원풍경. 1973년작 그의 그림은 한마디로 ‘미니멀리즘’이다. ‘비원풍경’(1973) 같은 작품에서 보이는 단순한 구도, 터치와 선 처리는 절제의 백미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혀 준다. 밑바닥에는 진하고 무거운 페이소스가 깔려 있다. 그의 페이소스는 슬픔이 아니라 나른함이다. 도상봉은 한국 서양화 1세대다. 일본 동경미술학교 출신인 그는 한국적 정서를 서양화 기법으로 담고, 동양화 기법을 더 한 새로운 회화의 경지를 개척한 작가로 꼽힌다. 덕수궁 미술관이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념전을 마련한다. 12월 8일까지 계속되는 전시회 명칭은 ‘균형과 조화의 미학’. 출품작은 70여점으로 1930년대 초기작에서 1970년대의 말기작까지 두루 나왔다. 작품은 인물화와 정물화, 풍경화로 크게 구분된다. 정물화는 꽃, 과일, 조선백자, 목기, 서양식 술병등이 화폭에 담겼고 풍경화는 그가 살던 혜화동 인근 모습이 담겨있다. 인물화는 1930년대∼50년대 작품으로 동경 미술학교 시절의 영향을 지니고 있던 때로 정확한 형태감각과 엄격한 조형미가 돋보인다는 평이다. 함남 홍원 출신인 도상봉은 경신고보, 배화여고, 경기여중 교사와 숙명여대 교수를 지내며 후진을 양성했고, 대한민국 미술대전 창설에도 참여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국전 추천작가, 예술원 회원,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딸 문희(64·미국 거주)씨도 화가로서 그의 맥을 잇고 있다.
정물 (1954)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백자와 국화 등은 도천이 생전에 가장 사랑하던 한국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소재들입니다. 그는 백자를 두고 자신의 친구라고 말하였을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이렇게 그가 향토적 소재로부터 느끼는 친밀감과 애정은 일제시대에 억압받았던 민족적 정서에 대한 그리움일 것입니다.
성균관 풍경 (1959) 그는 정물화를 주로 그렸으나, 비원이나 성균관 등과 같은 고궁이나 전통 가옥을 소재로 하는 풍경화도 종종 그려내었습니다. 그는 우아하면서도 품위있는 조선 민족의 정서를 반영할 수 있는 소재들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는 데요, 위의 그림에서도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은행나무와 함께 고풍스러운 성균관의 가을 풍경을 담아내었습니다.
[ 정물 (1966) ] 두 점의 이조 백자들과 사과, 모과 등 여러 과일들을 정갈하게 배치해 낸 정물화입니다. 우리나라 전통의 탁자 위에 사물들을 흐트러짐 없이 배치해 놓아 도상봉 특유의 엄격함과 자기 절제의 의식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작가 특유의 무게감있는 색조 분위기로 인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차분한 자아 성찰의 기회를 얻게 하기도 합니다.
백일홍 (1967) 노랑과 주황, 분홍, 빨강 등 모두 화려한 색이지만 도천은 이러한 꽃들의 색을 더욱 어둡게 하고, 뒷배경 또한 어둡게 처리하여 매우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리고 한두송이가 아닌 스무 송이 이상의 꽃들을 도천만의 백자에 담아 한가운데에 배치함으로써 도상봉 특유의 진중한 분위기의 그림이 만들어졌습니다.
고관설경(1969) 하얀 눈이 내린 전통 가옥의 모습을 눈덮힌 가지들이 인상적인 나무들과 함께 배치하여 그려놓았습니다.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 이나 별다른 것도 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관조하듯 도천의 그림은 조용히 일상생활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꽃 (1971) ] 하얀 국화와 노란 백일홍 그리고 라일락 등을 흰 화병에 꽂아 놓고, 무늬가 있는 천으로 뒷 배경을 삼아서 그려진 그림입니다. 여러 가지의 꽃들을 모아놓은 그의 그림은 실로 싱그러우면서도 견고한 느낌을 주고 있지요. 또한 빛을 받은 국화의 화사한 흰색이 매우 인상적이며 꽃과 잎들의 묘사에서도 섬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 개나리 (1973) ] 화사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의 노랑색으로 그려진 개나리 한다발이 화폭에 하나 가득 놓여 있습니다. 따뜻한 느낌의 개나리가 하얀 백자에 꽂혀 있어서 그 우아함이 더해져 있는 듯 합니다. 이렇듯 도상봉이 그리는 꽃들은 우리에게 친숙하며, 가까이에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이는 우리의 정서를 반영한다 볼 수 있습니다.
비원 풍경 (1973) 도천이 그린 풍경화들은 대부분 조용한 분위기의 공간 안에서 그 공간을 관조하는 시선으로 그려진 것들입니다. 어느 누구의 방해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을 채우고 있는 풍경들을 보면서 그는 그 풍경과 같은 마음으로 살기를 바란 것 같습니다. 그 또한 세상의 유혹이나 명예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루어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안개꽃 (1974) ] 하얀 안개꽃이 주는 차분하면서도 풍성한 느낌이 화면에 가득한 이 작품또한 그의 여러 정물화와 같은 의미에서 그려진 작품이죠. 물론 사진과 같지는 않더라도, 안개가 주는 이미지를 매우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그러기에 가벼운 안개라 할 지라도 결코 가볍지 않은 그림으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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