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식/나의 넋두리

고통/ 충고하는 법

선하도영 2007. 8. 24. 14:43

						
고통
우리가 흘린 피와 눈물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고통의 바다라고 비유한다. 고해(苦海)의 세계에서 고통은 물체의 그림자와 같고 소리의 메아리와 같이 사람들을 따른다. 붓다는 괴로움을 크게 4가지와 8가지로 분류한다. 생ㆍ노ㆍ병ㆍ사(生老病死)를 사고(四苦)라고 한다. 이 사고에 넷을 더하여 8고라고 한다. 다섯째는 애별이고(愛別離苦)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괴로움이고, 여섯 번째는 서로 미워하는 사람끼리 함께 살아야 하는 원증회고(怨憎會苦)이며, 일곱 번째는 구부득고(求不得苦)라고 해서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생기는 괴로움이고, 여덟 번째는 오음성고(五陰盛苦)라고 해서 정신과 육체에 집착해서 생기는 괴로움이다. 사성제중 고성제(苦聖諦)에서 붓다가 우리 중생의 삶이 고통이라고 진단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붓다는 다음과 같이 중생의 고통에 관해 말씀하고 있다.
`너희들이 과거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음에 윤회하면서 몸에서 흘린 피는 매우 많아서, 저 항하 강물이나 사방 넓은 바닷물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너희들은 과거 오랜 세월 동안 일찍이 코끼리로 태어났을 적에 혹은 귀·코·머리·꼬리·네 발을 잘렸었나니, 그 피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혹은 말의 몸·낙타·나귀·소·개와 그밖에 여러 짐승들의 몸을 받아 귀·코·머리·발과 온 몸을 베였으니, 그 피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또 너희들은 과거 오랜 세월 동안 혹은 도적에게 혹은 남에게 해침을 당해 머리·발·귀·코를 베이고 온 몸이 잘렸으니, 그 피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너희들은 과거 오랜 세월 동안 몸이 허물어지고 목숨이 끝나 묘지에 버려졌으니 그 때 흘린 고름과 피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혹은 지옥·축생·아귀에 떨어져 몸이 허물어지고 목숨이 끝나면서 흘린 피도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니라.`(『잡아함경』(『대정장』 II p.240下).

불교의 윤회 사상에 의하면 우리는 나고 죽기를 반복한다. 전생에 지은 업에 의거하여 현생의 몸을 받고 현생의 업에 따라 내생의 몸을 받는다. 육신을 보존하기 위해 모든 생명체는 고투하고 있다. 크게는 국가간의 전쟁으로 피바다를 만들고 작게는 서로 싸워 피를 뿌리기도 한다. 붓다는 우리 중생의 삶이 고통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붓다는 이러한 고통으로 가득 찬 윤회의 실상을 넓고 깊은 대양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생사윤회 속에서 한 개인이 흘린 피의 양은 대양의 물보다 비할 바 없이 많을 정도로 윤회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길고 긴 전생 속에서 수없이 많은 부모의 죽음을 겪었다. 그때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또 우리는 생사윤회의 반복 속에서 수 없이 많은 자식의 죽음을 겪었다. 그때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절친한 친구의 죽음도 있었을 것이고 친척의 죽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면서 흘린 눈물은 오대양의 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쟁으로 서로 남한과 북한에서 흩어져 살던 이산가족들이 상봉할 때 그리고 다시 헤어지게 될 때 우리는 눈물의 바다를 보게 된다.

특별히 무수한 세월을 통하여 맺은 부모자식 간의 인연에 관한 비유도 여기에서 소개하면 적절할 것이다. 이 세상의 흙으로 대추씨만한 크기로 환(丸)을 만들어서 과거 세상의 부모를 센다고 하여도 그 환(丸)이 모자랄 정도로 우리는 헤아리기 어려운 과거로부터 부모인연 자식인연을 맺어서 서로서로 사별할 때마다 우리는 숱한 고통의 눈물을 흘린 것이다. 현재 우리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여 현생에서 만의 고통을 경험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전생에서 겪은 고통의 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셈이다. 지금과 같이 계속 살아간다면 우리는 앞으로 계속 더 많은 고통의 피와 눈물을 흘릴 것이므로 생사윤회에서 벗어나 열반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발행일 : 2005-02-05
작성일 : 2005-01-31 오후 11:38:27
작성자 : 안양규 / 동국대 교수

 

 

3. 바르게 충고하는 법
진실되고 사랑하게 해야
사람들의 습성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충고나 비판을 듣기 싫어하고 반대로 남에게 충고하고 비판하기를 즐긴다는 것이다. 자신의 허물이 지적 받을 땐 바늘에 찔린 것과 같은 고통을 느끼므로 남의 지적을 싫어한다. 지적한 사람에 대해서 반감을 품거나 미워하게 된다.

타인의 허물을 바로 당사자에게 직언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만 붓다는 다음과 같이 조언하고 있다.

“만일 다섯 가지 법(法)으로써 편안히 머무르게 하면 남의 죄를 들추어낼 수 있느니라.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거짓이 아닌 진실, 적당치 않은 때가 아닌 적당한 때, 잘못된 이치로 유익하게 하려는 것이 아닌 이치로 유익하게 함, 거칠거나 난삽하지 않은 부드러움, 성내지 않는 자애로운 마음이니라. 사리불아, 죄를 들추어내는 비구가 이 다섯 가지 법을 갖추면 남의 죄를 들추어낼 수 있느니라.”

첫째 남의 죄를 들추어내기 위해 우선 무엇보다도 그 지적하는 내용이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가지고 지적한다면 그것은 모함이거나 비방일 뿐이다. 상대방이 스스로 저지른 잘못을 이야기해야지 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지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적당할 때 충고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지적하더라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하면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 상대방이 극도로 불안해하거나 의기소침해 있을 때 자신의 잘못을 지적 받으면 제대로 그 지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런 경우 아무리 유익한 충고일지라도 그 사람에겐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

셋째 바른 이치로 유익되게 하도록 도모해야지 감언이설로 속여서 유익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넷째 거친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유발하는 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협박성 발언은 삼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드럽고 상냥한 말로써 지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증오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적하거나 충고하는 것하고 상대방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말하는 것하고는 비록 똑같은 내용일지라도 커다란 차이가 있다. 나를 위해 충고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면 충고하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자신의 잘못을 고치려고 할 것이다. 반대로 상대방의 충고가 자신을 해치려는 의도라고 생각한다면 충고하는 사람에게 적대감을 느끼며 그의 말을 무시해 버릴 것이다.

이렇게 다섯 가지를 갖추어 충고하였는데도 상대방이 분노를 터뜨리고 욕설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리불은 세존의 자비심에 관한 가르침을 인용하며 충고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태도를 밝히고 있다.

“만일 어떤 도적이 와서 너를 붙잡아 톱으로 네 몸을 켤 때, 너희들이 도적에게 나쁜 생각을 일으키고 나쁜 말을 한다면 저절로 장애가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설사 톱으로 네 몸을 켠다 하더라도 너희들은 그에게 나쁜 마음을 일으키거나 또는 나쁜 말을 하여 스스로 장애를 만들지 말라. 그 사람에게 마땅히 자애로운 마음을 내어 원한도 유감도 품지 말며, 사방을 향해 자애로운 마음을 갖추도록 배워야 한다고 세존은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저는 마땅히 이와 같이 하겠습니다.” - 잡아함경(대정장 II p.129上)
발행일 : 2005-02-26
작성일 : 2005-02-22 오전 11:40:39
작성자 : 안양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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