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배와찬송/말씀

소명(召命)과 사명(使命)

선하도영 2007. 8. 27. 23:27
소명(召命)과 사명(使命)

“둘째야, 이리 좀 와 봐라.” “왜요? 엄마. 지금 좀 바쁜데….” “그래도 좀 와봐. 네가 좀 해 줄 일이 있어서 그래.”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고 컴퓨터에 앉아 소리만 돋운다. “엄마, 형이나 셋째 시키면 안 돼요? 지금 이 게임을 멈출 수가 없어요.”

“이것은 꼭 네가 해야 할 일이라서 그래.” “아휴, 엄마. 모처럼 게임이 잘 풀리고 있는데 하필 이럴 때….” 더는 안 된다는 느낌이었는지 둘째 녀석이 투덜거리며 안방으로 건너왔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꼭 제가 해야 한다는 거예요?”

잔뜩 얼굴을 찡그리고 나타난 것이 내 호출에 짜증났다고 시위 하는 듯하다. “미안한데, 엄마 심부름 좀 해줘야겠다. 너도 알지? 그 때 엄마랑 같이 다녀온 엄마 친구 집 말이야. 그 집에 이걸 좀 갖다 주고 와야 돼.” “이게 뭔데요? 꼭 지금 가야 돼요? 저녁에 가면 안 될까요?” 여전히 심통 난 얼굴의 둘째다. “급하다고 전화가 왔어. 이거 오늘 저녁에 쓸 물건이거든. 착한 아들, 지금 좀 다녀와라. 형은 집을 모르잖니. 그리고 막내는 아직 혼자 보내기는 어리고. 너밖에 없어서 그래.”

상황이 어쩔 수 없는 쪽으로 몰리자 녀석 맥 풀린 기색이다. “대충 어딘지는 알겠는데… 가물가물해서 찾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어요.” “근처 가면 생각날 거야. 전화번호 가르쳐줄게. 혹 동네 가서 못 찾으면 그 집에 전화해.” “알았어요. 옷 갈아입고 컴퓨터 끄고 올게요.” “땡큐, 우리 아들.” 그래도 단정하게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녀석이 내 눈에는 대견해보였다. 둘째를 골목까지 배웅하고 친구 집에 전화를 걸었다. “우리 둘째 알지? 지난번에 데리고 갔었잖아.

지금 출발했거든, 근데 집을 잘 찾을 수 있을지 몰라서 네 휴대폰 번호를 가르쳐줬어. 전화 손에 들고 있어. 전화 안 받으면 우리 아들 길 헤매니까. 우리 귀한 아들 고생하면 다 네 책임이다.” 저쪽 너머 친구가 ‘걱정도 팔자다’, ‘나도 아들 있다’는 등 한바탕 너스레를 떤다. 서너 시간이 지나자 둘째가 돌아왔다. 갈 때와는 사뭇 다르게 기분이 꽤나 좋아 보인다. “엄마, 다녀왔습니다.” “수고했네, 우리 아들. 집은 금방 찾았니?” “동네까지는 잘 찾았는데요. 골목이 비슷비슷해서 헷갈리는 거예요.

초행길인 사람들은 많이 헤매겠어요. 저도 이 골목, 저 골목 헤매다가 아줌마한테 전화를 드렸더니 골목입구까지 나오시더라고요. 형이 갔더라면 못 찾았을 거예요.” “그래서 너를 보낸 거야. 근데 기분이 좋아 보이네?” “아, 이거.” 녀석이 쇼핑백에서 뭔가를 꺼내 보인다. “이거 청바진데요. 아저씨가 이번 외국 출장 다녀오시면서 아들 것을 사오셨는데 사이즈가 안 맞아서 못 입는다고 저더러 입어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입었는데 완전 저한테 딱 맞잖아요.

그래서 아줌마가 주셨어요. 이거 되게 좋은 거예요. 백화점에서 무지하게 비싸게 파는 건데.” 그렇게 심부름 안 가보려고 투덜대던 녀석이 언제 그랬냐는 듯 청바지를 허리춤에 대가며 잔뜩 신이 나 있다. “거봐, 엄마가 너 심부름 보냈더니 오늘 횡재했잖아. 형 보냈어봐. 그럼 형이 집 찾느라 고생은 좀 했겠지만 이 청바지는 형 것이 되는 거잖아. 엄마 고맙지?” “넵.” 녀석이 경례를 붙이고는 자기 방으로 간다. “짜식~”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을 소명(召命), 그 후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는 것이 사명(使命)이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는 어떤가? 더러는 ‘아직은 아닙니다.’ 하고, 더러는 ‘저는 아닙니다.’ 하고, 더러는 ‘하필 지금입니까?’ 한다. 그러나 주님은 가장 적기(適期)에, 가장 적합한 자를,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부르신다. 아무나, 아무 때나 부르시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기쁜 마음으로 나아가라. 분명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 고난과 핍박과 모함이 따른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일을 맡기신 후에 나 몰라라 하지 않으시니 염려마라.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고, 천사를 보내서 도와주시고, 돕는 자를 붙이실 것이니 그저 부르실 때에 ‘아멘’ 하고, 일을 맡기실 때에 ‘아멘’ 하라. 불러주심에 감사하고, 일을 맡기심에 감사하라. 그러면 훗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과 함께 면류관과 푸짐한 상을 주실 것이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