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학/영상시

남겨진 이유

선하도영 2008. 10. 13. 18:16

남겨진 이유 /박성환

 

퍼질러 드러누운

몇 개의 농익은 은행 알이

보도 블록위에서 뭇사람의 발길에 밟혀

뭉개져 있을 때 그제서야 알았다

 

자글자글

주름살 깊은 노파가 굽어서 휘어진 걸음으로

한발,두발

병원 문턱을 넘어오며 내뿜던 고통의 숨소리가

가느다란 주사 바늘을 따라

방울방울

메마른 팔뚝으로 잦아들 그 때 그제서야 알았다

 

소나무 둥치에서 꿈틀꿈틀

느린 걸음으로 겨울집을 찾는

송충이 한 마리가 숨차게 바빠 보이는 것은

아마도...

살아있기에 즐거운 것일지도 모른다

 

모두들 살아있고 싶어 안달이지만

모두들 살며, 사랑하지만

거기 남겨진 이유를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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