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학/자작시

밑 그림만 더 진하게 그려 놓고왔네요/ 류경희

선하도영 2007. 7. 14. 16:00
      밑 그림만 더 진하게 그려 놓고왔네요/ 류경희 미술가를 찾으려고 바다를 갔어요 내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사랑을 그려 달라고 부탁하려구요 음악가를 찾으려 바다를 갔었어요 내 가슴에 묻혀 있는 당신을 향한 마음을 노래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 하려구요 내가 달려간 바닷가는 미술가도 음악가도 없었어요 모래사장에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발자욱들이 나의 노래고 그림이고 사랑이였어요 내가 이 발자욱을 하나씩 지워나가면 내 안에 내사랑도 지워질까 하나 둘 발자욱들은 지워나갔어요 내 가슴의 그림 배경이 된 바닷가의 모래사장을 다 지워버리려고 했어요 이토록 사랑을 지우려 하면 더 깊이 심장을 찌르는가 봐요 지워지면 그 곳은 무엇을로 채워질까요 변덕심한 마음을 미워할 수 없네요 밑그림만 더 진하게 그려 놓고왔네요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을테지요 내 밑 그림에 색을 칠하고 있겠지요 작고 크고 이쁜 색으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그림으로말이예요 사랑의 용기도 없는 바보 잊는다고 해 놓고 잊지도 못하는 더 바보예요 산에 화마가 지나간 자리 제비꽃이 피어 있는 것 처럼 용기를 가져야 하는데 말이예요 애써 지워버리려고 하니 더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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