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학/자작시

[스크랩] 썬다 싱의 명상록 1

선하도영 2007. 7. 16. 09:59

**  인도의 사두 썬다 싱의 명상 (1)  



1.

어느 어두운 밤
나는 기도하려고 숲 가운데 들어갔다.

바위 위에 앉아 나의 깊은 요구를 내어놓고
도와주시기를 구하였다.

잠깐 있노라니 한 가난한 사람이
나를 향하여 오는 것을 보고
아마 구차한 사람이
나에게 빌러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가지고 있는 것은 이 담요 하나밖에 없다.
그대는 이 가까운 동리에 가서 구걸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보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번개와 같이 빛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물 붓듯 하는 은혜를 나에게 부어주고 문득 사라졌다.

아아! 이는 내가 사랑하고 섬기는 주님이시다.

주님은 나같이 가련한 피조물에게서
아무것도 얻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다.

나에게 은혜를 주고 부요 하게 하시려고
오신 것인 줄 밝히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미련하고
통찰력 없음을 슬피 울며 그곳을 떠났다.


2.

나는 눈물로서 기도하며
주께 나의 영을 바쳤다.

"나의 주이신 신이여!
나의 생명의 생명,
나의 영의 영이시여!
긍휼로서 나를 살피시며 성신으로서 부어주소서.
나의 마음은 당신을 버리고
달리 받칠만한 사랑의 전당이 없나이다.
생명과 일체의 부여자인 당신 자신 외에는
당신에게서 아무 은혜도 구하지 않습니다.
세상과 그 안의 보배와 하늘까지도 요구하지 않나이다.
다만 당신을 사모하며 또 구하옵니다.
당신이 계신 곳 거기가 천국이므로
내 마음의 기갈은 다만 이것을 지어주신
당신에 의해서만 만족할 수 있나이다.
오! 나의 창조주여! 당신은 나의 마음을
다만 당신을 위하여서만 지은 것이요
다른 아무것도 위한 것이 아니옵니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마음은
당신 안에 있는 외에는
평화와 휴식을 얻을 수 없나이다.

나를 창조하시고 또 평안을 구하는
욕구를 주신 당신 안에서만
만족할 수 있습니다.

나의 심중에서 당신을 거역하는
모든 것을 없이하여 주시고
내 마음 안에 들어와 계시며
이와 같이 영원히 지배하여 주시옵소서."


3.

내가 이와 같이 기도하고 일어날 때에
한 빛나는 모양을 보았다.

그는 광휘 찬란한 아름다운 모양으로 내 앞에 섰다.

그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또 나의 눈은 눈물에 젖어서 밝히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생명을 주는 광선과 같은 빛이
몹시 힘있게 나의 마음에 부어들어 올 때
나의 영혼은 그 중에 잠겨들어 갔다.

그때 곧 나는 사랑하는 나의 구주가
내 앞에 선 것을 알았다.

나는 곧 나의 섰던 바위에서 내려서
그의 발 앞에 몸을 던졌다.

그는 그 손으로 친히 내 마음의 열쇠를 잡았다.

그리고 나의 열쇠로서
나의 내부의 실을 열고
그의 거룩한 임재로서 내 마음에 충만하였다.

그래서 나는 안을 보나 밖을 보나
어디든지 다만 그만을 보았다.
(천사나 성도나 악마나
다 우리 마음의 자물쇠를 열 권리와 능력이 없다.
또 우리 자신도 할 수 없다.
다만 우리 마음을 지으신 창조주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인간의 마음이
신의 보좌요 성인 것을 알았다.

이와 같이 그가 들어온 때부터
나의 마음속에는 천국이 열리었다.


4.

"나의 참된 아들아!
참된 행복은 육안으로 보는 자에게는 없다.

그것은 영의 눈을 뜰 때에야 아는 것이요
마음에 있는 것이다.

팔레스틴에서는 수천 인이 나를 보았다.

그러나 모두 참 행복을 얻은 것은 아니다.

썩어질 육안을 가지고 볼 수 있는 것은
썩어질 물건밖에 없다.

육안으로는 영원하신 영적 실재자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네 자신이 네 영혼조차 볼 수 없거든
어떻게 그 창조자를 볼 수 있느냐.

그러나 영안이 열리는 때에는
너는 확실히 영인 그를 볼 수 있다.

또 지금 네가 나를 보는 것은 육의 눈이 아니요
영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팔레스틴의 모든 사람들은 다 육안으로 나를 보았다.

또 썩어 없어질 인간으로 된 줄 생각하였다.

내가 죽을 육체를 취한 것은 이로써 세상 죄를 소멸코저 함이다.

그리고 죄인을 위하여 구원의 업이 완성될 때에
죽을 육체는 죽지 않는 영광 중에 변모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부활한 후에 나를 볼 수 있는 자는
영적 시각을 받은 자뿐이다.


5.

이 세상에 나에게 대하여 아는 자는 많으나
나를 아는 자는 적다.

그것은 저들이 나와 개인적으로
직접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들은 참 이해도 없고
나의 안에 있는 신앙도 없고
나를 저들의 구주와 주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마치 소경으로 난자가
붉고 푸르고 누른 여러 가지 빛깔에 대하여
말은 하나 그 미와 관상적 희열은 전혀 모르는 것과 같다.

눈을 뜨기 전에는 참 빛깔을 알 수 없다.

비록 박학한 사람이라도 그 영안이 뜨이기 전에는
나를 알 수 없고
나의 영광을 볼 수 없으며
내가 신의 화신인 것을 깨닫지도 못한다.

많은 신자들은 저들의 마음에
내가 임재 하는 것이
영적 생명과 평화를 주는 줄 알고 있다.

그것은 옳으나 직접 나를 볼 수는 없다.

마치 사람이 눈으로 모든 것을 보고 있으나
눈약 한 방울을 그 눈에 떨어뜨리면
눈은 그것을 보지 못하나
눈약이 눈 안에 있으므로 눈을 상쾌하게 하는 것같이
나의 내재가 그의 내적 광명의 눈을 밝히고
시력을 증진케 한다.

참 평화는 내가 신자의 마음에 임재 하는데서 생긴다.

그러나 나를 볼 수는 없고 다만 그 힘을 느끼며
그로 말미암아 그들은 행복하게 된다.

또 나의 현재에 의하여
그들은 평화와 기쁨을 느낄 수는 있으나
그 감정의 본체인 정신이나 마음을 볼 수는 없다.

이와 같이 나는 영이기에
나의 사랑하는 무리에게 숨긴 만나가 되어
생명과 기쁨을 준다.

그것은 이 세상의 지혜로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6.

병중에는 입맛이 없어진다.

비록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어도 도리어 맛이 나쁘게 느껴진다.

그와 같이 죄는 영에 관한 미각을 상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아래서는 나의 말이나 은혜,
나의 임재도 죄인의 주의를 끌지 못한다.


7.

아무리 아름다운 꽃동산도
어미를 잃은 어린아이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울며불며 보채던 그에게
어머니가 다가와 품에 안을 때에야 비로소
그의 마음은 평화를 찾고
다시 그 아름다운 꽃동산에서 여유롭게 뛰노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나의 사랑하는 무리들은
이 큰 세계의 동산에 있어 여러 가지 아름다운 것들이
마음을 끌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참 기쁨을 맛볼 수 없는 것이다.


8.

석탄의 한 조각을 취하여
그것을 아무리 씻어도 검은 것을 씻어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불 가운데에 넣으면
검은색이 변하여 붉은 빛으로 변한다.

그와 같이 죄인이 성령을 받을 때
그는 불 세례로 인하여 검은 죄의
더러운 것은 소멸되고 그는 세상의 빛이 된다.

석탄 속의 불과 같이
나는 나의 자녀들 안에 있고
그들은 내 안에 있어
나는 저들을 통하여
나 자신을 세계 중에 나타낸다.


9.

내 아들아!
만인의 심중과
그 형편은 내가 잘 안다.

나는 각 사람들의 중심의 요구에 응하여
나를 계시한다.

그러므로 아무 때나 나를 나타내지 않는 것인데
이를 모르고 사람들은 전 세상에
다시 나를 나타내주기를 바라며
그리하면 나를 믿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람을 바른 길에 돌아오게 함에는
나만이 아는 적절한 시기에
그때 나를 계시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인간을 위하여 나는 인간이 되었다.

즉 그들에게 신을 알리기 위함이다.

무서운 자나 또는 이상한 무엇이 되지 않고
사랑이 충만한 그들 자신과 같은 자가 되었다.

인간은 신의 모양으로 창조된 까닭이다.

인간은 자기의 믿고 사모하는 것을 보고자하는
자연의 욕구가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볼 수가 없다.

아버지는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를 이해함에는 그와 동질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신을 조금 이해할 수 밖에 없는
피조물에 불과하므로 신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신은 사랑인고로
인간에게 자기와 같은 사랑의 동질성을 부여하였다.

이 인간이 가진 사랑의 요구가 만족되기 위하여
나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형체를 취하였다.

그래서 내가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런고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인간으로 있을 때 나는 아들이라 불렸으나
나는 영원하고 무한한 아버지이다.


10.

나와 아버지와 성신은 하나이다.
마치 태양 중에 열과 빛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열은 빛이 아니요 빛은 열이 아니다.

그 나타남은 다르나 근본은 하나이다.

그와 같이 나와 성신은 아버지께로서 나와서
세상에 빛과 열을 준다.

불 세례를 주는 성신은
신자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죄와 악을 태워 없이하고
그들을 순결하고 거룩하게 한다.

참 빛인 나는 모든 암흑과 악한 요소를 쫓아버리고
그들을 의의 길로 인도하며 마침내 영원의 본향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 개의 다른 몸이 아니요 하나이다.

마치 태양이 하나인 것과 같다.


11.

신앙이 믿음으로 나타나지 않고
죄에 의해 부서지면 의심으로 모양이 변화한다.
사람들은 이 의심이 풀리면 믿을 수 있다고 여기나
의심은 믿음이 먼저 있어야 풀린다.

의심은 인간이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일이기 때문에 신을 믿을 때
그의 감화로 의심이 풀리는 것이다.

상처가 나아야 통증이 가시는 것처럼
믿음이 있어야 의심은 사라진다.

하나님을 믿지 못해 생기는 의심은
모든 죄의 원인이 된다.

죄로 인해 인간과 신과의 연락이 끊어진 때
영의 통증인 의심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신과의 연락을 갱신할 때
마음에는 의심 대신에 평화가 깃 든다.


12.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자기의 모든 피조물과
인간에 사랑의 성질을 부여하였다.

우리에게 생명과 이성과 사랑을 주신 이유는
이 모두를 바로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 사랑이 하나님과 그의 뜻대로 사용되지 않으면
그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으로 변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
또 사람과 피조물 사이를 불화시킨다.

나는 네 몸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였다.

모든 사람이 다 이웃이지만
특히 가까이 생활하는 자들이 이웃이다.

이 이웃을 잠시 사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으나
날마다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이기면
자기와 같이 남을 사랑하기는 쉬운 일이다.


13.

내 말은 나의 현존과 같다.

진심으로 나를 구하는 자에게는
내 말을 통하여 나를 나타낸다.

이는 마치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내가 인간의 육체로(말씀이 육신이 되어) 나타난 것과 같다.

내 말은 사람의 언어로 나타나기에
사람들은 인간적인 이성으로만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내 말은 영이요 생명이기에
성령의 영감에 의하지 않고는
육체로 나타난 나를 이해 못하는 것같이
내 말도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의 두뇌와 지식은
나에 대해 희미한 빛은 얻을지언정
나를 발견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육체의 작용에 불과하기에 그러하다.

인간에게는 스스로 나를 알아볼 힘이 없다.

생명은 영에 있고 영은 영으로 분별한다.

진실로 내 모습을 보고 내 말을 이해하려는 자는
영에 의해 움직이는 마음(육에 영향 받지 않는 마음)으로
느끼고
만지고
지각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성서의 의미도 영적이다.

영으로 거듭난 자만이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모국어인 성신의 감동으로 씌여져 있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은 믿음을 이성의 빛으로 만들어내려 하나
그것은 생명 없는 육체의 작용일 뿐이다.

믿음은 영의 기능이고 생명은 영에 있다.

정신으로는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14.

자연도 나의 의해 쓰여진 언어이다.

그것도 하나의 성서요 계시이다.

나는 자연 가운데 내 자신을 자유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이 자연을 읽는데도 영적 통찰력이 필요하다.

영의 눈이 열리는 자는 자연 가운데서 나를 만난다.

보이는 세계 속에서만 사는 자는
마치 소경이 손끝으로만 더듬어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것과 같아
이로서는 현존하는 세계의 참 형상을 알 수 없어
모든 것이 의혹 투성이다.

이런 자가 세상을 평하는 것은
아직 미완성인 그림이나 건축을 보고
그 결함을 말하는 것과 같다.

보이는 세계보다 안 보이는 세계가 더 본질이다.

보이는 모든 것은 안 보이는 세계로부터 온다.

안 보이는 세계는 내 뜻과 내 마음으로부터 지어졌기에
나를 만나는 자만이 그 세계를 볼 수 있다.

세상에 고통과 슬픔이 있는 이유는
전 창조물이 아직 완성을 향하여
진행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신은 하루에 이 모든 것을 지은 것이 아니요
또 하루 사이에 완성에 이르는 것도 아니다.

만약 인간이 저 멀리 앞에서부터
신과 같이 결점 없는 장래의 완성될 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면
그는 신 앞에 꿇어 엎드려 오히려 신을 찬양할 것이다.


15.

사람의 영혼이 육체 중에 머물러 있는 것은
병아리가 껍질 속에 알로 있는 것과 같다.

껍질 바깥에는 모든 세계가 있으나
그 껍질을 깨기 전까지는
도무지 그 세계를 알지 못한다.

또 병아리의 눈과 날개는
그 세계를 위하여 준비한 것이니
때가 오면 볼 수도 있고 날 수도 있으나
껍질을 깨기 전에는 그 용도를 알 수 없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신이나 보이지 않는 세계나
미래에 대하여서도 그러하다.

그 이유는
그 껍질과 같은 육체를 초월하여 높이 볼 수 없고
날개 같은 고상한 사상도
두뇌의 작은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들의 약한 눈과 이성은
신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준비한
영원히 썩지 않는 세상을 보지 못한다.

그것을 보려면 육체로 있는 중에
신앙에 의하여 성령으로부터 생명의 힘을 받아야 한다.


16.

죄는 사람이 자신의 요구를 만족케 하여
자기를 기쁘게 하려고 신의 뜻을 배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이와 같이 행하는데서
참 행복을 가질 수 없다.

죄는 그 자신 독립적이지
(그 스스로는 존재 못하고
타의 존재 곧 선과 진리가 없는 상태)
못하기에 창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상태나 조건의 이름이다.

하나님은 선이시기에 선만을 창조하신다.

사단은 그 무엇도 창조할 수 없다.

그는 이미 피조된 것을 악하게 할 뿐이다.

죄는 다만 존재의 허위요 선이 없는 기만적 상태일 뿐이다.

예컨대 빛은 실제 존재하는 어떤 물체이나
어둠은 물체가 아니요 빛이 없는 상태일 뿐이다.

선이 없는 이 악의 암흑상태는 가장 무서운 것이다.

만약 내가 인간을 일률적으로
기계와 같이 지어 타락을 막았다면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의한 행복'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아담과 이와는 죄 없는 상태에 있어
거짓과 속임(이는 사단 속에만 있었다)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한 까닭이다.

이 거짓과 속임 역시 사단 이전에는 없던 것으로
바로 사단에 의해 처음 생기게 되었다.

사단도 교만의 존재를 알지 못한 것은
사단 이전에 교만이 없던 까닭이다.
(우리는 미지의 세계의 모든 사물을
잘 알 수는 없으나 빛만을 붙든다면
어둠 속에 빠지지는 않는다)
사단과 인간이 죄로 인해 타락했을지라도
신은 가장 존귀한 결과를 취하셨다.


17.

사람이 죽는데는
모든 지체가 다 약하거나
무용하게 되어 죽는 것은 아니고
어느 한 부분이 병들었든지
혹은 정신이나 뇌에 타격을 받으면
그것으로 생명을 죽이기에 충분하다.

이와 같이 한 죄의 악독한 결과는
생명을 파괴한다.

또 이 죄는
한 가정,
한 국가,
한 민족을 파멸시킨다.

이의 대표가 아담의 죄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나의 한 마디 말은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리고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부여한다.


18.

혹시 금수나 조류가
인간가운데 오래 길들인 후에
자기 종족에게 돌아가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것은 악인이 성도나 천사들이 사는 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신이 죄인을 지옥으로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위의 거룩한 환경이 그들과 조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도 선인의 무리에
들기 싫어하였는데
어찌 하늘에서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겠느냐.

우리는 생애를 마치기 전에 천국이나 지옥 중
어느 편에 접근한다.

그의 선악에 따라 그의 심중에
천국이나 지옥이 건설된다.

이 땅에 있을 때 주님의 말씀에 의해
하나님의 형상인 영의 몸이 형성되고
성령에 의해 생기가 전해져 선을 행할수록
그 몸은 점점 아름답게 완성을 향해 지어져 간다.


19.

나비나 벌레들은
불을 보면 자신이 타는 것은
생각지 않고 다만
그 환한 빛에만 미혹되어 뛰어들다 죽는다.
(이런 현상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뜻을 가르친다)

사람도 죄의 파괴적 세력은 주의하지 않고
그 화려한 향락에만 도취되어 멸망한다.

죄는 한 망상이나 상상물이 아니고
인간의 악한 의지의 활용에 의하여 일어나는
영적 암흑상태이다.

악의 씨는 그 영에 스며들어 마치
천연두가 단 시간 내에 사람의 미를
추악(곰보)하게 만드는 것처럼
그 영을 멸망케 한다.

신이 악을 짓지 않은 것처럼 병이나
고통도 짓지 않았다.

고통이나 병은 상상물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의 죄나 그가 일원으로 속한
가족의 숨겼던 죄가 볼 수 있도록 나타난
열매요 표상이다.


20.

인간의 두뇌에서 나오는 정신과
이해의 눈은 참 빛이 없으면 무용지물이고
오직 영에 의한 마음의 작용만이
인간을 깊은 데로 이끌 수 있다.

마음은 신의 궁전이기에
이곳에 신만이 왕으로 모셔질 때
우리의 이성과 지혜는 독립적으로
빛을 찾는데서 벗어나 마음의 깊은 움직임과 함께
작용하게 된다.

이 세상의 깨달은 자들이
참 빛은 받지 못한 채
이성의 빛으로만 모든 것을 바라보니
영의 일을 육으로만 풀려하여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는 마치 어둠 속에서 뱀을 잘못 쥐는 것과 같다.

사단이 이와를 꾀인 때도 동물 중에
제일 영리한 뱀의 형상으로 나타나
이와가 마음에 계신 하나님을 찾기보다
자기 이성의 빛으로만 판단하도록 유혹하였고
또 그의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된다고 속여
지식의 눈은 밝히고
마음의 영적인 눈은 어둡게 하였다.

오늘날도 사단은 철인의 지혜를 쓰고
박학자의 학문을 이용하고
신자의 이성과 지식만을 이용해
자신의 뜻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이성과
지식만으로는 불충분하여
여기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마음의 선이 따라야 함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나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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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랑합니다 나의 하나님 사랑합니다 여러분
글쓴이 : 전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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