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아린 흔적
여름 과일의 여왕인 수박은 누구나 즐기고 좋아하는 까닭에
인기가 있는 과일임이 틀림없다.
중후한 몸집에 자기 나름대로 줄무늬로 모양을 갖추고 입맛을
유혹하는데 그 속살 붉음은 가히 예술품이 따로 없는 듯하다
오늘 나는 때도 아닌 배를 사다가 몇 번째의 배숙을 만들고 있다.
배 꼭지를 도려내고 속을 파서 그 안에 꿀을 넣고 다시 도려낸
꼭지로 뚜껑을 닫고 찜통에 오래 쪄서 배가 말랑해 지면
기침하시는 어머니께 드리곤 한다
또 찹쌀을 폭 끓여서 다 풀어지면 배를 한 개
갈아 넣고 다시 끓여 드리기도 한다.
늑골이 세대 금이 가서 기침을 자주 하시니 뵙기 민망하여 약이야
되던 아니 되던 기침에 좋다 하니 정성을 다해 만들어 본다.
이렇게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어머니의 기침은 다 나으신
것 같이 기분 좋아하시고.
외국에 있는 내 딸은,
엄마~ 나도 이다음에 엄마하고 외할머니처럼
엄마를 내가 보살펴 드릴 날도 있겠지요, 호호, 하고는
서울에 수박 나올 때 되었네요.
할머니 수박 참 좋아하셨는데, 한다
어머니 다치셔서 모시고 있는 것도 타국에 있으니
정이 그리워 부러운 모양이다
그리고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하니 어머니 간호한다고
오히려 효도 받을 일 미리 예약한 셈이 된 것 같아 혼자 웃는다.
수도가 고장이 나서 신고를 했더니 수도국에서 수리를 나왔다
메다 밖에 누수라서 자기들이 수리를 한다고
트럭에 장비와 인부 5명이 왔는데 메다 통을 새것으로 바꾼다고
마당을 사람 키만큼 파 놓았다
땀을 어찌나 흘리는지 어머니는 수박 한 통사다가
시원하게 드리면 좋겠다고, 하신다.
급히 가서 시원하게 해서 파는 수박 한 통 무겁게 안고 와서 쪼개니
너무나 잘 익고 먹음직스러운 것이 정말 대단하다
많이 내다 드려라 하시어 한 통을 거의 다 쪼개어
큰 유리쟁반에 수북이 내다 놓으니,
와~~하며 인부들 얼굴이 환해진다.
금년에 처음 맛보는 수박이라면서 어찌나 단지 말도 못하고
먹는다고 농을 하신다
이렇게 많이 주시니 푸짐하여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배부르다고
저보고 복 많이 받으시라고, 말하며 호탕하게 한바탕 웃는다.
수박 한 통에 복까지 빌어주니 웃음꽃 피고
행복이 따로 없는 듯 즐겁기만 하다.
여름이 오면 수박은 우리의 마음을 흐뭇하게 푸짐하게 만든다
그런데
수박 한쪽 들고 계시는 어머니 손목이 거칠거칠하고
껄껄한 것을 만져보며 마음이 말할 수 없이 아리다
육이오 때 8남매 키우시느라 공장 하시며
실 털고 풀먹이고 감고 하시다가 여름에는 햇볕에 땀띠로
헐고 겨울에는 손목이 얼어 터서 짓무르고
수년을 그리 고생하신 훈장 같은 상처이기 때문이다.
공장에 사람을 50명쯤 거느리고 일하셨으니
그 마음고생은 오죽하셨을까?
금강 건너 세도에는 원두막과 수박 참외밭이 즐비했는데
참외도 지게로 한 지게씩 사오시고 수박도 열 통을
넘게 사오시던 기억이 난다.
둑에 올라서서 강 건너 원두막을 바라보면 그 푸름이
외국의 넓은 농지를 보는 듯했고
서리하려고 금강을 건너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위험한
서리는 어떤 사람들이 할까? 늘 궁금했었다.
결혼하고 이야기 들으니 신랑이 고교생 때 도강하여
참외 수박 설이 하던 그 많은 사람 중 한 사람 이였다니
설이 하려 도강하던 사람과 결혼할 줄이야,
지금은 서리 할 때 위험하기만 하던 금강에 다리를 놓아서
재미는 적겠지만 서리는 더 많이 할듯하다
그렇게 힘들게 기른
아들 다섯 딸 셋은 이제 어엿이 잘 살아 황혼을 맞아 늙어 가는데
어머니 손목에 상처는 94이신 지금까지 가시지 않고
딸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수박 한 통으로 복 받으라는 인사도 받고 수박 드시는
어머니 바라보며 마음도 아프지만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현실에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속살 붉은 수박처럼 나도 그렇게 중후한 붉은 사랑 빛
곱게 물 드리고 주위사람들에게 즐거움 선물하며
황혼을 아름답게 보내고 싶은데~
수북이 쌓인 수박을 부러운 듯 바라만 본다.
원고지 14장/송림유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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