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음악치료의 활용
이승현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한방음악치료센터 교수
『황제내경』과의 만남
언뜻 음악과 한의학은 전혀 상관성이 없는 서로 별개의 학문처럼 보인다. 필자도 석사학위 논문을 쓰던 1990년 5월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음대에서 서양음악을 전공했지만 학부 때부터 국악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는 자연스럽게 석사논문 주제를 독일 가곡(Lied)과 한국 전통가곡의 음악적 표현방법에 대한 비교연구로 잡았었다. 그리고 서양음악의 표현법과 우리 전통음악의 표현법을 비교하면서 서양의 음계와 전통음악의 5음 음계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던 중 음악에 관한 책이 아닌 곳에서 5음 음계에 쓰이는 궁(宮), 상(商), 각(角), 치(徵), 우(羽)에 대한 글을 발견했다. 그 책이 바로 『황제내경』이라는 한의학 최고의 서적이었다. 처음에는 한의학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황제내경』이 어떤 책인지도 몰랐고, 얼마나 가치 있는 책인지도 몰랐다. 그냥 ‘왜? 음악서적이 아닌 한문만 잔뜩 있는 이 책에 음계가 나오지?’ 하는 단순 무식한 마음으로 물음표만 크게 해서 밑줄 그은 채, 책을 덮었었다. 그리고 5~6년이 지나서 음악학의 한 분야로 미국에서 연구된 음악치료를 공부하게 되면서 심리학에 접목되어 있는 음악치료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고, 음악치료의 다른 연구 방법을 생각하던 중 『황제내경』에서 봤던 5음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그때부터 한의학에 있는 음(音)의 요소들을 연구하면서 한의학 공부에 빠져들게 되었고, 약 2500여 년 전 오랜 옛날부터 음악과 한의학이 깊은 연관성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한방음악치료를 연구하게 된 배경이다.
지금까지의 음악치료
음악치료는 음악을 매개로 한 행동주의 심리학을 중심으로 해서 발전하였는데, 음악치료를 통해 치료 대상자의 행동(行動)을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는 행동과학의 영역에 포함된다.
여기서 말하는 행동의 변화에는 자신감, 사회성, 대인관계 능력, 정서적 발달 등 사회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행동들이 연구대상으로 포함된다. 즉, 지금까지의 음악치료 방법은 치료대상자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자폐아나 사회부적응자의 심리적·정신적 이상 상태를 복원하여 사회적응자로 향상시킬 것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아, 음악을 매개로 한 행동주의 심리학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왔다.
필자는 서양의학과 행동주의 심리학이 결합된 기존의 음악치료에서 발전시킨, 단순한 심리치료의 차원이 아닌, 우리 전통의학의 이론과 치료방법을 도입한 정신과 육체적 질병 치료에 쓰이는 새로운 음악치료의 개발이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보고 치료하는 전일체 관념(全一體 觀念)은 한의학의 기본 사상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한의학 이론을 중심으로 한의학적(韓醫學的) 관점에 입각한 한방음악치료의 연구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한방음악치료의 개요
한방음악치료는 한의학의 이론과 치료방법을 바탕으로 연구된 새로운 음악치료법으로, 편향된 기(氣)를 조절하고, 불안정한 정신과 육체를 조화롭게 하여 각종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여 건강을 증진시키는 요법이다. 이것은 기존(旣存)의 서양의학적(西洋醫學的) 관점에서 행해지고 있는 음악치료와는 달리,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보는 한의학 이론에 접목되어 연구된 새로운 한방요법이라 하겠다. 따라서 기존 음악치료의 한계를 벗어나 정(精), 기(氣), 신(神)에 영향을 주어, 정신 및 정서적인 질병과 연결된 치료뿐만 아니라 육체의 형질(形質)적인 질병에도 치료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는 음악치료의 이론과 연구라는 점에 우수성이 있다.
한방음악치료에서는 우리의 전통음악인 국악과 서양의 클래식 음악을 같이 쓰는데, 국악도 가락, 장단, 악기 음색에 따라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오행으로 분류해서 목기(木氣)를 발하는 목기음악, 화기(火氣)를 발하는 화기음악, 토기(土氣)를 발하는 토기음악, 금기(金氣)를 발하는 금기음악, 수기(水氣)를 발하는 수기음악으로 분류한 오행음악을 사용하고 있다. 또 서양의 클래식 음악도 선율, 리듬, 화성, 악기음색에 따른 목기음악, 화기음악, 토기음악, 금기음악, 수기음악으로 분류한 오행음악(五行音樂)을 쓰고 있다.
음악을 쓰기 전에 반드시 각 환자에 대한 한의학적 변증을 해서 음악을 투여하기 때문에 같은 목기음악이라 하더라도 피아노의 목기음악을 줄 때가 있고, 현악4중주의 목기음악을 줄 때가 있다. 사람들에게 목기음악의 제목만을 주면 누구에게나, 동일한 병증에는 다 같은 음악을 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못 사용될 때가 많다. 허나 한의학에는 동병이치(同病異治)라는 치료법칙이 있다. 동일한 병이라 해도 그 치료법은 환자에 따라 다 각각 달라서 침을 놓기도 하고, 다른 약을 쓰게 된다. 한방음악치료에서도 마찬가지로 같은 목기음악을 투여할 때도 환자에 따라 각각 다른 목기음악을 주고 있다. 따라서 구체적인 음악을 열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생략한다.
치료 방법
인체(人體)의 음양(陰陽) 관계는 음(陰) 또는 양(陽)의 어느 한쪽이 편쇠(偏衰)하면 다른 한쪽이 상대적으로 항성(亢盛)하게 되고, 음(陰) 또는 양(陽)의 어느 한쪽이 편성(偏盛)하면 다른 한쪽이 허쇠(虛衰)하게 되어 음양의 편승 또는 편쇠가 발생하여 질병이 일어난다. 이러한 인체(人體)의 음양속성(陰陽屬性)은 한의학의 생리(生理), 병리(病理) 등 병사(病邪)와 인체의 관계를 해석하고 치료하는 데 광범위하게 응용되고 있다. 따라서 한방음악치료를 실시할 때는 인체 각 장부(臟腑)의 음양 속성을 살피고, 각 장부(臟腑)의 허(虛), 실(實), 보(補), 사(瀉)에 따른 한의학적 변증을 한 후 그에 맞는 오행음악과 오행리듬 등을 사용하는 17가지 한방음악요법을 시행하고 있다.
한방음악치료에서는 오장(五臟)의 오행지기(五行之氣)를 통해 생명활동을 주재하는 것에 부합하는 요법을 실시하고 있다. 오장(五臟)은 외규(外竅, 눈, 코, 입, 귀 등등)를 열어 천지(天地)의 기운과 교통할 뿐만 아니라, 오장(五臟)의 신(神)은 외규(外竅)의 정보 수집을 근거로 해서 환경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고 수용하여 자기의 생명추기(生命樞機)를 작동하는 데 활용하고 인체의 생명활동을 영위해 가기 때문에 오장의 오행지기를 돕는 음악(音樂)의 자극은 인체의 여러 가지 질환을 개선할 수 있다.
악기연주에서도 서양악기와 국악기를 같이 사용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한의학적 변증을 통해서 목기(木氣)가 필요할 때는 목기를 발하는 악기를 환자에게 주고, 한방음악치료사가 목기리듬으로 분류된 리듬을 치면서 환자가 따라올 수 있도록 제시해 준다. 때로는 목기를 발하는 악기로 화기(火氣) 리듬을 치게 해서 목생화(木生火)의 이론을 쓰기도 한다. 서양악기든 국악기든 전혀 다루지 못해도 한방음악치료사를 따라서 하다 보면 환자 스스로에게 필요한 리듬과 선율들을 연주하게 된다.
효과 및 임상 사례
다음의 임상사례는 한방음악치료 요법을 조혈모세포이식센터에 있는 혈액암환자들에게 실행한 후 심리적, 육체적으로 변화된 환자의 생리적, 병리적 현상을 측정한 것으로, 이를 통해 한방음악치료가 심리적 치료 수단으로뿐만 아니라 육체적 질병치료의 수단으로도 쓰임을 보고하고자 한다.
연구방법은 혈액암 환자의 항암 약물치료와 더불어 한방음악치료를 실행한 후 백혈구 수(WBC)의 증가 및 면역 수치를 말하는 절대호중구수(ANC, Absolute Neutrophil Count)의 수치 변화를 측정하여 실행 전과 후의 수치 비교를 통해 유의성을 검증해 보았다. 이러한 연구는 그동안 발표되었던 한방음악치료에 대한 논문 및 식물, 동물실험 논문을 통해 검증했던 유의성을, 임상연구를 통해 육체적인 질병치료의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한방음악치료가 유효함을 탐색한 것으로, 중풍이나 뇌경색, 당뇨 등 다른 질환에도 약물 및 침구치료와 더불어 한방음악치료를 폭넓게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본 데에 의의가 있다.
이 연구는 한방음악치료 요법 전문가와 한의사가 개발한 한의학 변증진단을 위한 설문지를 사용하여, 각 환자의 건강상태 및 병인(病因)을 조사하고 맥진(脈診)과 망진(望診)을 통하여 치료방향을 정한 후, 여기에 맞는 한방음악치료 계획을 세워 환자에게 시행하였다. 변증은 오행이론에 입각하여 하였으며 음악의 선정도 이 기준에 따랐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혈액암 환자의 여섯 가지 사례에 대하여 통계를 통한 검증을 실시하였는데, 각 사례의 대한 한방음악치료 실행 전후의 WBC 및 ANC 수치 비교 결과를 살펴보면, WBC나 호중성백혈구(Neutrophil)의 절대수에 있어서 현저한 증가를 보여, WBC 검사에서는 P=0.0419로서 유의성 있음의 결과가 나왔고, ANC 수치에서는 p=0.0262로서 유의성 있음의 결과가 나왔다.
한방음악치료에 대한 검증방법으로는 환자에 대한 기본검사와 매주 2회 악기연주치료를 실행하기 바로 전과 후에 각각 1회씩 혈액검사를 실시하여, 한방음악치료 실행 전후의 비교검사를 했다. 비교검사를 통해 얻은 WBC 및 ANC 수치 측정자료를 t-test를 통해 통계 처리하여 유의성 여부를 검증했다.
그밖에 한방음악치료 요법을 받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방음악요법에 대하여 개방적이고 비구조화된 질문 형태를 통한 진술평가를 하였다. 대상자 스스로 한방음악요법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서술하도록 하였고, 면담 결과로 나온 환자 각각의 진술을 요약한 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하여 검토하였다.
1) 한방음악치료 실행 전후의 백혈구 및 절대호중구수 비교검사
매주 2회 악기연주치료를 실행하기 바로 전과 후에 각각 1회씩 혈액검사를 실시하여, 그 측정자료를 t-test를 통해 통계 처리하여 유의성 여부를 검증했다.
① 한방음악치료 전후의 백혈구 수(WBC) 변화에 대한 검증
② 한방음악치료 전후의 절대호중구수(ANC) 변화에 대한 검증
2) 환자의 진술평가
한방음악치료 요법을 받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방음악요법에 대하여 개방적이고 비구조화된 질문 형태로 진술평가를 실시하여 대상자 스스로 한방음악요법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서술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평가 결과로 나온 환자 각각의 진술을 요약한 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하여 검토하였다.
3) 결론
1940년대 후반 미국에서 개발 연구되어 우리나라에 들어와 현재 실행되고 있는 음악치료는 서구의 행동주의 심리학과 음악이 결합되어 연구된 방법으로 자폐아나 정신지체인 등 심리적, 정신적 이상 상태를 안정시키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되고 있는데, 이에 반하여 한의학의 이론과 치료방법으로 새롭게 연구된 한방음악치료는 정신적, 심리적 치료수단뿐만이 아닌 육체의 질병 치료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본 실험을 진행하였다. 이번 임상실험에서 혈액암 환자의 심리적 갈등과 스트레스 해소에 긍정적인 설문 결과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환자의 진단 및 변증을 통해 신체적 병증 치료를 위한 한방음악치료를 실행한 결과, 백혈구 수치의 증가 및 면역력을 보여 주는 절대호중구수의 증가에 유의성을 얻게 되어 앞으로의 한방음악치료 활용의 가능성을 높였다고 본다.
이승현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거쳐 동 대학원에서 한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자대학교 음악과 강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경희대 교육대학원 한방음악치료 교육자과정 주임교수로 있으면서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한방음악치료센터 교수를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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