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며칠전 시어머님께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몇년전 맡았던 공사가 잘못되어
3년째 누적되어 오던 일들이 질못되어
내일이 이사를 해야 되는데
직장을 다니는 나는
이삿짐을 하나도 꾸리지 않고
전날밤에야 마트에서
이삿짐을 꾸릴 종이 박스를 구해와서
온집을 다 헤치고 있는데도
남편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정말 속이 상해서 남편을
죽이고 싶도록 미웠습니다.
가정을 이런 상황까지 만들어 놓고는
눈꼽만치도 미안하기는 커녕
술자리에서 노래가 불러지는지 ...
너무 속이 상했지만
아이들이 있어서 울지도 못하고
내 기분을 숨기고 아이들과 큰소리로
수선을 떨고 있을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시어머님이셨습니다.
시댁이나 친정식구들 누구에게도
이사한다는 얘기를 못했습니다.
지금까지도 힘들게 살았서
부모님들에게 저희는 항상
죄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기에
또 더 나쁜 상황을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차에 어머님께서는 남편이
가져다 쓴 빚을 갚지 않는다고
제게 화풀이를 하시는지
어머님의 속상함을 제게 퍼부어대는데
저는 그만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어머님께 더 이상 이 사람과
못살겠으니 이혼하겠노라고 지금까지
한번도 편히 살지 못하였고
남편이 벌어다 준돈으로
밥먹고 살지 않았노라고 엉엉 울며
저를 바라보고 있는 등뒤의
두 아이를 생각하지도 못하고
연로하신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울고 싶은 아이에게 매들 든 격이 되신
시어머님은 그저 할말을 다 못하시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나이가 들기 전에는 항상 나만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가끔씩은 내 팔자가 나빠서
남편이 고생하는 것인가하는 생각도 하고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고
억울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백만장자는 백가지
걱정 억만장자는 억만가지 걱정이라고 하던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듯이
걱정없는 집이 없었습니다
저희들 처럼 돈이 없는 사람들,
건강이 좋지 않은집,
애 먹이는 가족이 있는집.....
어제 새벽 여명이 밝아 오기 한참 전,
남편이 일 하러 나가고 머리를 감고
동네 뒷산의 작은 절에 갔습니다.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우고
108배를 정성껏 올리고
맑은 물을 떠서 내려오니
마음이 한껏 가벼웠습니다.
내가 살아갈 기운은
제 스스로 차려야 겠습니다.
이번 주말에 시댁에서는 묘사를 지냅니다.
항상 내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참가하지 않았는데
시어머님께 죄송하다는 말씀도 드리고
따뜻한 내의 한벌 사다드려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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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MBC라디오 여성시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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