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재산입니다
저는 44세의 평범한 가장입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이라는 말을
희망으로 바꾸고 싶었던 어린시절을 보내고
어머니가 감자 한 말 팔아서 마련해 준 돈
2만 5천원을 들고 내려온 곳이 이곳 부산입니다.
외삼촌의 도움으로 한국해양대학교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공부만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밤을 낮 삼아 공부했습니다.
대학 4학년 때 은사님의 도움으로
한 중소기업의 사장님을 만나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1년 공학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제가 근무하는 업체의 사장님입니다.
직장과 학교를 오가며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이상한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밥맛이 없고 쉽게 피곤해지며, 살이 자꾸 빠졌습니다.
그렇지만 운동부족이거니 하고 넘겼습니다.
2003년 11월 아내의 권유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때 병원에서 발견한 것은 3.5cm의 뇌종양.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습니다.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으라는 말에
다음날 바로 휴직계를 내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1년을 오가며 방사선과 기타 치료를 병행하는 동안
희망보다는 절망적인 말들만 들려왔습니다.
힘겨워하는 아내를 위로하면서
희망을 가지자고 달래고 또 달랬습니다.
2004년 10월 병원으로부터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저는 '이렇게 가는 구나' 생각했습니다.
부산으로 내려와 아내에게 금전적인 것을
논의하였더니 전세금 천오백만원에
회사에서 나오는 급여 50%가 전부라고 합니다.
저 하나 바라보고 시집온 아내입니다.
무일푼의 총각에게 행복하게 해준다는
그 말 한마디만 믿고 시집온 아내였습니다.
그 아내에게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시한부 삶을 살아가고 있는 무능한 가장...
저 없이 아이 셋을 돌보며 살아갈 아내를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전에 있는 을지대학병원이
신경외과에 좋은 장비를 가지고 있으니
한번 가 보라는 친구의 권유를 받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MRI 사진을 보면서 수술을
해 보자는 희망을 심어주셨습니다.
2004년 12월 28일 9시간의 대수술 끝에
저는 다시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인제대학교 겸임교수를 하면서
회사의 역량을 높여가면서
건강하고 희망찬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새벽편지 가족님들!
어떤 일이 있어도 희망을 버리면 안 됩니다.
희망이야 말로 가장 큰 재산입니다.
힘입니다. 능력입니다.
즐겁게 살아가게 도와주신
주위의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최 보 규 -
누구에게 주어진 권리이지만
누구나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희망을 갖는 일' 아닐까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 희망은 축복의 시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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