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순의 문학기행 ] 향수의 서정시인 정지용[1] 이기순 |
월북이냐,납북이냐는 시비로 오랜 동안 빛을 보지 못하던 불운의 대시인 정지용(鄭芝容). 이름 석자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작품은 아예 들추지도 못하던 시절이 불과 십 년 남짓인데, 그 사이 세월도 가고 시절도 변해 주옥 같은 그의 작품을 마음껏 애송할 수 있으니, 뽕 나무 밭이 변하여 바다가 되었다고나 해야겠다. 1988년에 이르러서야 금지에서 해제되면서,그의 작품<향수>가 고향 노래의 대명사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타관살이로 전전하는 현대인들의 귀소 본능의 탓이려니. 고향의 산천을 작품 속의 정경들과 연결시켜,아른한 회상에 젖어 동심 속을 꿈결같이 오고 가는 것은 그 시절의 삶에 대한 그리움이 추억으로 피어 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귀향하는 기분으로 시인의 흔적을 더듬어 생가와 시비를 찾아 등짐지고 내친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손쉽지만, 빨리 가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물론 행선지를 찾아가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기는 하나,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이곳 저곳 스쳐가는 여정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기왕에 나선 길인데 중간에 몇 곳을 더 살펴보는 것은 여행의 경제 효과를 더해 주어서 좋고, 마음의 여유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지금은 물바다가 되어 버린 문의(文義)의 잃어버린 내 고교 시절의 시심(詩心)도 반추해 보리라. 청주를 거쳐 대청호의 흐름을 따라 외진 길을 굽이굽이 돌아간다. 물안개 자욱한 호반이며 산기슭을 감돌며 피어 오르는 골안개가 곧<향수>의 서정이고 고향의 정서들이 아니던가. 더우기나 삼십 년만에 연락이 닿은 대전의 고향 친구 一 서로가 객지에 나와 다니느라 힘들었던 시절이었는데, 지용의 향수는 곧 저와 냐의 향수다. <향수>의 시향(詩鄕)을 찾아가는 길에 옛 동무와 동행하며 못다한 옛날을 정담으로 나눌 수 잇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시적 분위기도 더할 수 있고 서로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 되겠기에, 대전을 들러 옥천(沃川)가는 길로 들어섰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 비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위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하늘에는 성근 벌 /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정지용이 22살 되던 1923년에 지은 서정시다. 그는 서울로 올라가 휘문고보를 졸업하고,일본의 동지사(同志社)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서구 문학에 심취하여 모더니즘 경향의 작품 세계를 개척한 인물이다. 모더니스트로서의 그의 작품을 논하기보다는,단순히 한국적 정서와 흙내음 가득한 작품 <향수>와 <고향>의 인정 속으로 들어가 삶의 원형을 탐구하고, 그의 자연관의 일면이나마 살펴보고자 함이 본래 나그네의 뜻임을 미리 밝혀둔다. 작은 굽이를 이루고 흐르는 개울 저쪽 끄트머리쯤에 늦은 오후엔 나지막한 소리로 울어댄다. 저녁 무렵의 고향 모습은 언제나 한가롭고 평화롭다 못해, 외롭고 적막한 고요를 자아내게 한다. 여느 집이나 소 먹이는 일은 아이들의 차지였다. 아침엔 산이나 개울가에 소를 매어놓은 뒤에나 학교에 갈 수 있었고, 심지어는 학교 길에 함께 몰고 가다,오가는 길 옆 개울가 나무 그늘에 매어 두었다가, 점심시간이면 나와 소에게 물을 먹이곤 했다. 학교가 파하고 돌아오는 길엔 다시 고삐를 몰고 풀을 뜯기다 집으로 오는 일이 일상이었다. 고삐를 뿔에 감아두고 아이들끼리 놀다보면 해가 저물어 허둥대기 일쑤였다. 쇠죽을 끓인 불을 화로에 담아 놓았지만, 추운 겨울 바깥에는 싸늘하고 매서운 바람소리가 마치 황야를 달리는 말굽소리처럼 냐뭇가지를 흔들어대며 세차계 휘몰아친다. 밤이 깊어가면서 질화로에 담아둔 불이 재로 사위어지면,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치던 아버지께선 피곤에 지쳐 짚단을 베개 삼아 눕거나 잠드시던 모습이 선하다. 잊혀지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목말라 하는 시인의 안타까움이 그대로 묻어난다. 흙에서 태어나 고향 밖을 벗어나 보지 못한 아이들에겐 하늘 끝 산 너머는 가보고 싶은 동경의 세계요, 꿈이 가득 서린 이상의 세계다. 수수깡을 잘라 가느다란 못이냐 바늘을 꽂아 화살 삼아 쏘면, 무게가 가벼워 풀섶으로 엉뚱하게 날아가 버려 찾지 못한 채, 눈물을 훔쳐내던 일이 어디 작자뿐이었겠는가.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누구나 고향의 산천과 가족들의 얼굴이 파노라마로 되살아 난다. 정지용은 장손으로 태어난 탓에 조부의 성화로 일찌감치 결혼하여,나이 어린 아내를 두고 서울로 일본으로 유학길에 나서야 했다. 방학이 되어서나 고향 옥천을 찾게 되는 그로서는 고향에 남겨두고 온 어린 누이동생과 젊은 아내가 그지없이 측은하게 여겨졌을 것은 물론이다. 층층시하 시부모 밑에서 농사일에 시달려야 하는 시골 아낙네로서는 얼굴을 가꿀 틈도 없을 뿐만 아니라, 햇볕에 검게 그을린 모습이며, 버선조차 신지 못하고 사철 맨발의 모습으로 흙 속에 딩굴어야 하는 애처로운 영상이 뇌리에서 잠시도 떠날 날이 없었을 것은 당연하다. 작품 전편에서 느껴지는 향토의 정서는 물론이려니와、 늘 마음에 애잔한 아픔으로 살아나는 것은 아내에 대한 작가의 각별한 연민의 정이다. 하늘에 별이 하나 둘씩 드물어지고 별빛조차 희미하게 느껴질 즈음이면 늦가을 된서리가 초가지붕에 하얗게 내리는데도, 흐릿한 등잔불은 꺼지지 않고 마실 온 이웃들과 밤이 깊도록 무슨 사연인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 정겨운 모습이 주마등처럼 피어 오른다. 이 작품은 고향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의 주정적 어조를 특히나, 매연마다 반복되는 후렴은 단순한 표현 기법을 극대화 시키고, 우리를 수구초심(首邱初心)으로 몰아 간다. 고향을 차마 잊을 수 없는 것은 정겹고 따스한 추억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의 고난이 아픈 기억으로 겸쳐 오르기 때문이다. 고향의 추억은 우리 한국인에게서는 평생을 두고 혈육이란 생명과도 맞바꿀 만한 대상이요,나서 자라고 꿈을 키운 고향의 산과 들은 내 몸의 살덩이고 영혼의 영원한 귀의처다 |
'환상의 드라이버코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기순의 문학기행 ] 향수의 서정시인 정지용[2] 이기순 (0) | 2008.09.24 |
---|---|
강변 드라이브의 명소 분원-수청리길 (0) | 2008.09.24 |
설악면-모곡리, 홍천강 드라이브 (0) | 2008.09.24 |
서울 북쪽의 기산저수지와 보광사 (0) | 2008.09.24 |
김포 대명포구와 강화 초지진 (0) | 2008.09.24 |